3. 경칩(驚蟄).이제는 깨어날 때,

아기의 절기

by 종우리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한난(寒暖)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칩 [驚蟄] (한국세시풍속사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봄이 왔지만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침 공기는 차고 낮에 부는 바람 또한 차다. 경칩이 지나고 잠깐 따뜻한 날이 있기도 했으나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다행인 것은 꽃샘추위가 찾아오기 전 아내와 나 그리고 아기는 밖으로 자주 외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퇴근 후에 밖에서 만나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주말이면 집 근처로 조금 오랫동안 나가기도 했다. 할머니가 오셔서 같이 외출을 한 적도 있었다. 봄이 오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외출의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니 봄이 오긴 오고 있었다.


아기는 예전보다 점점 더 성장했다. 예전에는 주는 것을 그냥 받아먹기만 하더니 이제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과 먹기 싫은 것을 곧잘 구분한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는데 가장 신기한 것이 식사 때 모습이다. 작년 내가 육아휴직 할 때 아기는 뭐든 잘 먹었다. 맛을 음미하기보단 그냥 주는 대로 먹었다. 이유식을 처음 할 때는 아무 맛도 안 나는 미음부터 간이 안 된 10배 죽, 4배 죽, 그러다 간이 조금 된 유아식까지... 모두 잘 먹었다. 아기와 동갑내기 딸을 둔 지인은 자기 딸이 안 먹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음식을 주면 입에 물고만 있고 잘 씹질 않아 먹이는데만 하루 종일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아기는 그냥 주는 족족 먹었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20~30분 사이면 끝이 났고 얼른 정리한 뒤 놀다가 낮잠을 자는 편이었다. 고맙게도 먹는 걸로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지 않아 감사해하고 있다. 그런 아기가 요즘은 채소를 잘 안 먹고 고기나 메인 반찬 위주로만 먹는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잘 먹으니 괜찮은데 앞으로 어떤 식으로 달라질지 모르겠다. 계속 잘 먹되 골고루 먹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걷는 것도 곧잘 걷고 넓은 공원이나 실내로 가면 뛰어 다니고 한다. 그만큼 운동 신경이 발달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부모인 우리가 보기엔 아직 불안 불안하다.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아내 말로는 아기가 '뚱땅뚱땅' 걷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아직 불안한 점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매일 좋아질 것이기에 크게 걱정은 안 한다. 그저 잘 먹고 잘 움직여서 활동량이 더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 경칩 기간에는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 생각보단 많이 나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 겨울에 비하면 정말 외출하기 좋은 날들이 많아서 좋았다. 앞으로 날씨가 더 따뜻해질 것이기에 좋은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


건강하게 잘 자라던 아기에게 경칩 기간에 가장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장염'이었다. 보통 장염은 비위생적인 무언가를 먹었거나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잘 걸리는데 우리 아기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다만, 예상컨대 흙을 만지고 손을 제대로 씻지 않은 상태에서 음식을 먹어서가 아닐까 추정만 할 뿐이다. 그날도 저녁즈음 밥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평소와 같은 날들이었고 아내는 '당근'거래를 할 일이 있어 잠시 외출을 했다. 거실을 치우고 있던 나는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길래 '잠이 깨었나 보다'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침대보에 아기가 먹었던 것을 다 토하고 일어나서 울고 있었다. 놀래서 아기를 들어 밖으로 빼낸 뒤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혹시 체한 것은 아닌가 해서 봤지만 별다른 이상도 없었다. 체온도 정상이었고 모든 것이 괜찮았다. 다시 재우고 잠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다시 토했다. 놀래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병원을 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그냥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날이 밝는 즉시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내가 집에 도착하기 직전 아기는 다시 한번 더 토했다. 3번을 토한 것이다. 다시 씻기고 있을 때 아내가 도착했고 둘이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사실 혼자 있을 땐 너무 무서웠다. 장염을 처음 보기도 했고 상비약도 없어서 손쓸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나마 아내가 도착하고 난 뒤 둘이서 뭔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아내가 도착한 뒤로도 아기는 2번 더 토했는데 그 뒤로는 잠을 잘 잤다. 자기 얼굴에 토하면서 얼마나 놀랐을까?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급히 인터넷에 찾아보니 비슷한 증상으로 글을 올린 분들이 있었고 대부분 다음 날 '오픈런'으로 병원으로 갔었다고 했다. 우리 아기도 다음 날 병원을 갔는데 장염이라며 약을 처방받았다고 해다. 문제는 아기는 하루 만에 괜찮아졌는데 아내가 장염이 옮아서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 혼자서 토하고 설사하고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힘이 없어 보였다. 아픈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혼자 다니느라 힘들기도 했을 텐데 장염까지 옮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육아시간을 쓰고 집에 오자마자 둘을 간호하고 집 정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는데 나 역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는 괜찮았다는 것! 아기가 아프면 엄마나 아빠 한 명은 건강해야 모두를 돌볼 수 있으니 평소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날 큰 일이었는데 그래도 이후엔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아플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똑똑한 거 것, 잘난 것 다 필요 없고 그저 건강한 것이 최고다는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기상이변이 많은 요즘 같은 시대엔 이상한 질병도 많이 생긴다. 어떤 질병이 창궐하더라도 우리 아기는 건강하게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칩의 기운을 받아 아픈 것 없이 건강하게 깨어나 앞으로의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최대 소망이 아닐까 한다. 입춘 이후의 삶도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며 더 많은 것을 누리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아기가 지나간 자리는 길이 없고 장난감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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