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리면 항상 목이 아프다고 하는데 병원에 가니 이번에도 역시 목이 많이 부었다고 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지만 입맛은 없는 아이. 뭐라도 먹고 싶다고 하면 해주고 싶은데 이것저것 물어봐도 도리질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깻잎 있어요?" 물었다.
아이가 말하는 깻잎은 친정엄마가 해주신 양념장을 얹은 깻잎이다.
마침 김치냉장고에 비상식량으로 저장해 둔 깻잎이 남아있었기에 부랴부랴 밥을 지어 깻잎과 차려냈다.
웬걸,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엄마 덕을 보았다.
그날 오후 엄마와 통화하는데 손녀가 아프다는 소식에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냥 감기일 뿐인데도 그랬다. 엄마는 반찬을 보내주시겠다며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더운 날씨에 반찬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릴 엄마 모습을 떠올리니 단박에 괜찮다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첫째 아이가 "할머니! 매운 오징어랑 잡채요!" 했다. "그래, 그래. 해줄게. 또 없어?", "김치부침개도요!" 덧붙였다.
아이는 어딘가에서 잡채를 먹게 될 때마다 "할머니 잡채가 제일 맛있는데." 한다. 그 점은 나도 동감이지만 내 엄마를 너무 부려먹는 거 같은 내 딸이 살짝 야속하게 느껴졌다.
신혼 초에는 친정에 가서 엄마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면 그저 든든하고 기분 좋기만 했다.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구나.', '엄마 반찬 맛있겠다.' 이런 생각밖에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삼시세끼 집밥을 차려 먹다 보니 엄마가 해주신 반찬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난 엄마 반찬을 챙겨 오지 않으려 노력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시면 사 먹으면 된다고 말씀드려서 엄마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이런 내 맘도 모르고 하나뿐인 사위가 장모님 음식이 최고라고 말해서 다음번 방문 때는 반찬 가짓수가 더 늘어나 있기도 했지만.
어느 날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딸, 엄마 반찬이 이제 맛이 없니?" 물어보셨다. 하도 내가 괜찮다고 사양하니까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런가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그럴 리가 있냐고, 우리는 엄마 반찬이면 밥 한 그릇 뚝딱이라고 하니 그제야 안심이 되셨는지 웃으셨다. 엄마가 힘드신 게 싫어서 그랬던 건데 오히려 엄마는 그런 걱정을 하고 계셨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이 엄마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기에, 결국 내가 먼저 얘기는 안 하더라도 엄마가 반찬을 해주시면 감사하게 받기로 마음을 바꿨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온종일 씨름할 딸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는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첫째 아이가 특별 주문한 반찬에, 사위와 딸이 좋아하는 반찬도 빼놓지 않고 챙겨주셨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만드셨을까 싶어 코끝이 찡해지는데 이런 엄마 속도 모르고 아이는 "우와! 진짜 많다. 잡채도 있는 거 맞죠?" 했다. 우리 딸, 아빠 딸 맞네.
반찬뿐만 아니라 몇 가지는 밀키트처럼 해동시켜서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해 주셨고, 아이들 간식으로 손수 쪄서 개별 포장한 옥수수도 들어있는 걸 보고 엄마의 세심함에 감동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리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그냥 하나만 했으면 좋겠는데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한 마음으로 냉장고에 반찬을 챙겨 넣었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반찬 덕분에 한시름 덜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사랑 덕분에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해졌다.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면서 조만간 나도 엄마께 밥상을 차려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 손맛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내 가 만든 음식에도 엄마를 위한 마음과 사랑이 담겨 있을 테니 그런대로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