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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다 Aug 11. 2023

커피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커피를 끊은 지 4일째 되는 날

나는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게 있다면 커피. 하루 한잔은 필수였다.




아침에 두 아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이 벗어놓고 간 옷가지며, 그새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집안 곳곳을 정리한 뒤 세탁기를 돌린다.

경쾌하게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에 맞춰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까지 들고 한 바퀴 구석구석 돌아보고 나서야 나만의 아침 루틴이 마무리된다.

집안일을 마친 뒤 그날 마실 커피를 골라 커피를 내리면 그렇게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다.

커피의 향과 맛도 좋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 주는 행복감이 있다.






처음 커피를 마신건 고등학교 시험 기간 때였다.

지금처럼 카페인 음료 종류가 많았던 때가 아니다 보니 잠을 덜 자려면 커피를 마셔야 했다.

독서실 자판기에 500원 동전을 넣고, 맥스x 캔커피를 뽑아 마셨다.

달달한 그 맛은 눈이 번쩍 뜨이는 맛있었다. 탄산음료와는 차원이 달랐다.

커피를 마시면 확실히 잠이 오지 않았다.

카페인에 내성이 없을 때라 그랬는지 하루 한잔만으로도 충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오전에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나의 잠을 깨우는 좋은 친구이자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육아를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셨던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한숨 돌리고, 각성효과로 반짝 덜 피곤한 기분마저 들었으니까.

친구에게 카페인 중독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웃으면서 "알코올 중독이 아닌 게 어디야. 커피는 괜찮아."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 커피가 몸에 나쁜 건 아니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작년 여름,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들락날락했다. 위염이 원인이었다.

증상이 호전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식사는 물론이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커피도 술도, 매운 음식도 안 좋다고 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커피는 멀리하기 영 힘들었다.

좋아질 만하면 한 모금씩 커피를 마시고, 결국 원상태로 돌아갔다.

1년 동안 상태가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이번 여름방학이 끝나고 몸살을 겪었다. 그냥 몸살인 줄만 알았는데 복통도 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복통의 원인은 커피였다.

아이들 방학이라고 하루에 두 잔씩 얼음 꽉꽉 채워 마신 것이 탈이 난 듯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커피를 끊기로 했다. 나로서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복통과 더불어 속이 메쓰꺼운 기분을 하루종일 느끼는 것이 더 괴로웠다.


 




오늘로 커피를 끊은 지 4일째.

하루 한잔 마시던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뿐인데 난 연인과 헤어진 사람처럼 하루종일 멍한 상태다.

게다가 집중이 잘 되지 않아 글도 쓸 수 없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첫째 날부터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밤 10시면 잠이 들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아이들이 잠든 그 시간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고작 4일 째지만 커피를 멀리하면서 겪는 후폭풍이 꽤나 크다.

하지만 연인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데 언제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커피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으니 20년도 더된 인연인데, 하루아침에 쉽게 끊어지겠는가.

그래도 일단은 헤어져야 한다. 지금은 그게 맞는 것 같으니까.

잠시만 안녕일지 영원한 이별일지는 모르겠지만 커피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여전하니 참는 수밖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지만 참아내야 한다.

아직 커피를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찾고 싶지는 않다.

진짜 커피와 헤어지게 되면 그때는 커피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겠지만 말이다.




제목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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