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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다 Aug 27. 2023

물고기 키우기, 육아랑 닮았네

반려어까지 다섯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가 왔다.

첫째 아이가 같은 반 친구에게 받아온 물고기 베타였다.


아이는 예전부터 계속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조르고 졸랐었는데 이사하고 집정리가 되면 그 후에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던 터였다.

이사를 하고도 꽤 시간이 흘렀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기다릴 만큼 기다린 거였었나 보다.

아이 친구는 사정상 반려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화려한 지느러미를 뽐내는 베타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첫째 아이에게 준 것이었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이미 그 친구는 키울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기에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생각해 보겠다고 약속을 한건 엄마인 나였으니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이미 베타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답 없는 베타를 바라보며 계속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넌 우리 가족이 될 운명이었나 보다. 같이 잘 살아보자.' 나는 그렇게 얼떨결에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되었다.






반려어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이 덜컥 맡게 된 상황이었으니 검색부터 시작했다.

검색창에 '베타', '베타 키우는 법' 등을 닥치는 대로 입력해 우리 집에 온 베타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었다.


베타는 '투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수컷들의 싸움은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합사가 힘든 물고기라고 했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이었다. 식구를 더 늘릴 마음은 없었으니, 아이에게도 사랑이는 꼭 혼자 지내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했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말이 있듯이 베타를 키우기 위해서도 다양한 것들이 필요했다.

아이 출산을 앞두고 아이를 위한 여러 물건들을 하나씩 준비했던 그 마음으로 베타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빛의 속도로 구매했다.


플라스틱 커피잔에 담긴 채 우리 집에 왔기 때문에 어항이 필요했고, 열대어라 물온도가 중요했기에 온도계, 물을 따뜻하게 데워줄 히터, 먹이, 베타를 옮길 때 필요한 뜰채, 스포이트,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알몬드잎, 수질중화제, 꽃침대, 미네랄 쏠트, 베타 사료까지...

반려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여러 아이템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를 데려온 것은 아이였지만 사랑이를 잘 키우기 위한 모든 준비는 나의 몫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엄마찬스가 아닐까.


좁디좁은 플라스틱 커피잔에 담겨있는 사랑이가 안쓰러웠기에 다음날 어항이 오자마자 전날 받아놓은 물을 채워놓고 혹시나 싶어 수질중화제를 몇 방울 첨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이는 처음에는 낯설어하더니 이내 유유히 어항 이곳저곳을 다니는 여유를 보였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자고 깨자마자 사랑이를 보러 거실로 달려갔다.

"잘 잤어?" 인사를 하고, 서로 먹이를 주겠다며 투닥거렸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진한 교감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먹이를 주러 가면 쪼르르 쫓아오는 사랑이 모습이 귀여웠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물멍을 하는구나.' 이해가 될 만큼 나 역시도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사랑이는 먹이도 잘 먹지 않고, 온도계 뒤나 장식물 안에 숨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푸른 빛깔의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뽐냈었는데 지느러미도 많이 상한 상태였다.


혹시 이러다 갑자기 용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우리 집에 온 생명을 오랜 시간 잘 살게 돌봐주고 싶었는데 온 지 얼마 안 되어 떠나보낸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포기할 수 없으니 무엇이든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상태를 꼼꼼히 살펴서 사료 종류를 바꿔보고, 양도 줄여봤다. 최대한 어둡게 환경을 바꿔보기도 하고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그래도 사랑이 상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환수가 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수를 자주 해줘야 한다는 말에 2,3일에 한번씩 부지런히 환수를 해주었었는데 이것이 예민한 성격의 사랑이와 맞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레어링(지느러미를 부풀리게 하는 활동) 역시 사랑이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사랑이를 위한 마음에 했던 행동들이 실은 사랑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아서에 나온 그대로를 내 아이에게 적용할 수 없듯이 물고기를 키우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사랑이에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내 아이에게 맞는 나만의 육아법이 필요한 것처럼 반려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사랑이에게 맞는 방법을 적용해야 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어도 그것을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모가 아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지나친 관심은 때론 독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속에 간직한 채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편이 더 낫다.


사랑이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먹이를 줄 때 외에는 아이들에게 어항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나 역시도 멀찌감치서 사랑이를 지켜봤다.


부디 기운 차려주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느꼈던 것일까.

일주일을 내내 숨어 지내던 사랑이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이제는 아주 활발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한 달을 못 넘기고 용궁에 가는 건가 걱정했었는데 사랑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아이 둘에 물고기까지 셋을 돌보느라 정신없지만 그럼에도 사랑이가 있어 참 좋다.

"사랑아, 용궁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오래오래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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