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금요일,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작복작하게 보낸 지난 한 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글쓰기도 못하고 일찍 잤지만 여전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내일이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졌다.
더군다나 약간의 몸살기운이 느껴져서 병원까지 다녀왔기에 눕기만 하면 그대로 꿈나라로 갈 것만 같은 예감.
엄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두 아이들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림책도 원하는 만큼 다 읽었고, 혹시나 아이들이 딴 소리 할까 봐 물도 미리 먹였으니 다 됐다 싶었는데 첫째 아이가 뜬금없이 크리스마스 얘기를 꺼냈다. 올 것이 왔구나. 오늘 잠자리 토크 주제는 크리스마스인 것인가.
"엄마, 크리스마스 전에 미리 쿠키 만들어야겠어요."
"그래, 그러자." 대답하면서 웬 쿠키 했는데 "당근도 준비해야겠어요."까지 듣고 비로소 이해가 됐다.
아... 산타할아버지 드리겠다는 거구나. 루돌프 몫의 당근까지 준비하겠다는 아이. 엄마가 준비할 게 점점 늘어나는구나, 고마워, 딸.
초등학교 1학년 7살 첫째 아이는 아직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어린이이다.
유치원 6살 반 친구들이 혹시나 산타할아버지는 사실 아빠나 엄마라고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두근두근했는데 웬걸, 아이는 여직 철석같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다.
작년에 은근슬쩍 그럼 유치원에서 선물 주신 산타할아버지랑 쇼핑몰에서 만난 산타할아버지는 누구냐고 했더니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산타할아버지가 부탁한 거죠." 하는 게 아닌가.
아이 말대로라면 산타할아버지가 전부 다 찾아갈 순 없으니 외주를 줬다는 건데 그럼 산타할아버지를 두 번이나 만나놓고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집으로 산타할아버지가 오시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건 왜 그런 건지, 외주 직원은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엄마는 그것이 알고 싶다.
어쨌든 아이는 산타할아버지 오시면 드시라고 쿠키도 만들어놓고, 컵에 우유까지 담아놓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참! 산타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 글씨도 어찌나 또박또박 예쁘게 쓰는지, 근데 열심히 쓰면서도 "산타할아버지가 한글을 알까요?"걱정했더랬다. 산타할아버지는 다 읽을 수 있다고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한다고 얼버무렸는데 그게 통하는 걸 보면 역시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
나는 유치원 졸업 이후 '산타할아버지는 없구나.'하고 깨달았다.
나의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를 달력의 빨간 날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기에 크리스마스를 챙기거나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좀 더 커서는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시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왠지 어릴 때의 추억은 없어서 아쉬움이 있다. 그 나이 때에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아이가 엄마랑 아빠가 산타할아버지를 대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최대한 늦게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3살인 둘째 아이는 아직 산타할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왠지 누나가 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덩달아 믿겠지.
그동안 내가 산타할아버지를 대신해서 편지도 쓰고, 산타할아버지에게 드릴 쿠키를 손수 만들어 트리 옆에 놓아두었던 정성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산타할아버지를 챙기는 아이의 마음이 예뻐서.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인 것인지는 몰라도 나의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12월, 산타할아버지 얘기만 꺼내면 사사삭 할 일도 금방 끝내고, 시키지 않아도 밥도 알아서 잘 먹는 그런 귀여운 모습을 몇 번은 더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산타할아버지에게 아이가 쓴 편지와 산타할아버지에게 빙의해서 엄마가 쓴 편지는 잘 보관하고 있으니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보면 추억이 될 것 같다.
올해 크리스마스부터는 둘째 아이 편지도 써야겠다. 왜 누나 거만 있냐고 산타할아버지한테 삐질 것 같네. "써줘도 편지 못 읽잖아." 이 말은 내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으로.
나중에 아이들이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며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우리 산타할아버지 생각하면서 행복했잖아? 그거면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