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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ffalobunch Mar 22. 2019

목욕탕



아침 출근길에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자주 가던 목욕탕이 폐업을 하여 각종 잔여물 제거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더 좋은 대형 찜질방 및 사우나가 점점 늘어났고 동네 목욕탕은 발길이 끊겼었는데, 비단 나뿐이었겠는가? 자연스레 손님 수가 줄었을 것이다. 영업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정리 수순을 밟는 것은 당연한 일있은 줄 알면서도, 왜 이리 씁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과거 추억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들에게 목욕탕이라는 곳은 단지 묵은 때만 벗기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끈끈한 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

학창 시절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여느 학생들보다 착하고 바르게 자랐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그 엄하신 아버지 말씀에 엇나가고 말 안 듣고 반항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다른 집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버지와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지는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동네 목욕탕이었다. 친구들과 가는 게 더 재미있고 좋았지만, 목욕이 끝나면 사주시던 아버지의 그 바나나 우유가 그리워서 돈 500원이 아쉽던 시절 목욕은 굳이 아버지와 갔다.

괜스레 미울 때면 아버지 등을 시뻘겋게 때타월로 박박 밀고는 시치미를 떼곤 했었고, 그 엄하신 아버지께서는 따갑단 말씀 한마디 안 하시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근엄한 표정으로 참으시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분명 어린 내 눈에는 아버지께서 참으신 걸로 기억한다. 아니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유일하게 가까워졌던 목욕탕에서의 시간들도 손에 꼽을 만큼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젠 동네 목욕탕도 늙어서 없어졌고,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서 없어지겠지.

남자들의 목욕탕은 그런 곳이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고, 친구들과는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곳이다. 서로 밑천 다 드러내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치고 쯜래 쭐래 활보하며 함께 낯짝이 두꺼워지는 유일한 곳이다. 그리고 바나나우유가 가장 맛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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