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마음을 훔쳐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괜히 센척하는 것이다. 여린 속 마음을 들키기 싫어 아닌 척했던 날들이 많았다. 쌓였던 속은 썩어 문드러질 때도 많았고,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해소를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혼자 무작정 걷고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고, 숨이 끊어질 듯 뛰어 보기도 했고, 술에 의존한 채 잠깐이나마 그 생각들에서 도망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좀처럼 내속에 자리 잡은 것들은 쉽게 떠나질 않았다. 정처 없이 떠도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새벽 공기에 취해 그간 쌓였던 것들을 일부러 토해버리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떤 감정인지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것들을 실컷 토해버리고 나면 좀 후련한 맛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끝에 맴도는 씁쓸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유한한 인생이지만, 도대체 그 당시에는 왜 그 소중함을 몰랐을까 싶다. 지나고 보면 심플한 일들인데, 그 당시에는 도무지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사사로운 것들에 심취해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곤 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과 순간들이 어떤 이에겐 기억조차 희미한 흔적이 되고, 어떤 이에겐 두고두고 생각나는 소중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엔 인생의 풍미를 좌우하니 훗날 맛깔난 옛이야기들을 건넬 수 있는 인생을 살았다면 그게 바로 후회 없는 인생이지 않을까 한다.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보따리가 가득한 인기 많은 흰머리 가득한 할아버지라면 아마도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뭔 소린가 싶다. 하지만 뭐 센척하면서 꺼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이렇게 토해버리는 일종의 해소의 작업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난밤 꿈속에 돌이가 아직 아픔이 가시지 않아 약봉지를 찾아야만 했던 내 모습이 너무 슬펐다. 돌이의 모습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 너무 슬펐던 꿈이었다. 올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돌이와 함께 있는 걸 보니 길 잃지 않고 잘 찾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훗날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 20대와 30대를 함께 보낸 돌이라는 둘도 없는 반려견이 있었다면서 지금의 기억을 되살릴 일이 있을 테니 희미해지지 않도록 잘 간직해야겠다. 그땐 아프지 않은 돌이가 꿈속에서 20대의 나와 뛰어놀고 있지 않을까. 참 아쉬움이 많아 더 힘든 밤이다. 존재의 부존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