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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ffalobunch Mar 19. 2020

쉼표가 필요한 순간들,


살다 보면 쉼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쉼표가 있을 때 쉬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연주가 되지 않는 것처럼. 쉴 때 잘 쉬어야 그다음 스텝을 잘 밟아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강박 때문에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한다면, 제대로 달려야 할 때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동안 그래 왔다. 10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멍청한 생각들이 스칠 때도 있었다. 그 누가 봐도 쉬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컨대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아프고 싶다거나, 경미한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하는 그런 류의 생각들 말이다. 정말 못난 생각들인데 그만큼 핑곗거리를 찾고 싶었다.



우연히 틀었던 슈가맨 방송에서 노래방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와 한참을 봤다.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에, 그리고 그가 전하는 삶의 무게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휠체어에 앉는 게 소원이었고, 노래를 부르는 게 소원이었다."

잠깐이나마 스친 생각들이 얼마나 병신 같은 생각인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무언가를 잃지 않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큰 복이라 생각한다. 가슴에 새겨야 한다. 잃고 후회해봐야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작년 이맘때쯤부터 많은 것들을 잃었다. 사촌 여동생을 잃었고, 할아버지를 잃었고, 돌이를 잃었다. 왜 그전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좀 더 많이 건네지 못했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 더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잃고 나면 그 자리가 후회들로 채워진다는 것을 왜 몰랐는지..



집안 한구석에 자리 잡은 돌이의 작은 유골함이 오며 가며 눈에 밟혀 매번 발걸음과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모두가 가슴에 묻기로 했지만, 18년을 함께한 가족인데 어디 그게 쉽게 될 일인가? 혹시나 돌이가 우리 걱정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가는 길에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됐다.

사실 돌이가 꿈에 몇 번 찾아왔었다. 매번 떠나기 직전의 많이 야윈 모습이라 꿈에서 만난 날은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난날의 후회들로 온통 사로잡혔다. 가슴에 묻기에는 빈자리가 너무 컸던 것 같다. 도대체 무엇으로 그 자리를 메꿀 수 있을까? 평생을 안고 가야 할 빈자리다. 단언컨대 다른 것들로 가득 채운다고 한들, 완벽하게 그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평소에는 존재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물건이라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땐, 얼마나 그 빈자리가 신경 쓰이는지 모른다. 뭐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사면 그만이라지만,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잃어버린다면? 평생 그 빈자리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별은 아무리 경험이 많더라도 매번 쉽지가 않다. 힘들다. 한 줌의 흙으로 돌려보내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간을 묻고 다시 꺼내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고서야 돌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두었다. 비록 마음에는 묻지를 못해지만 말이다. 아직 살아있는 것 같고, 금방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것만 같다. 아무리 묻어도 그 빈자리는 흉터처럼 영원할 것이다.


인생에 있어 일련의 사건들이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때가 간혹 있다. 그때는 반드시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마침표를 찍을 때가 아니라 쉼표를 찍고 되짚어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때 찾은 의미가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된다. 만약에 가쁜 숨을 내쉬고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정작 끝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순간 주저앉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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