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감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손흥민, BTS,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이런 일련의 감상을 부정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이런 영광의 순간들을 위해 힘썼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중 하나는 극 중 기택(송강호)이 말하는 대사였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을 세워 봤자 결국 그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무계획이야말로 결과가 어떻든 가장 완벽한 계획이 되는 것이다. 다소 허탈하지만 인생의 모든 경험치가 함축된 기택의 대사.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이라 말하는 기택도 기우(최우식) 앞에서 자신이 쌓아온 인생 경험치를 깡그리 엎어버리는 말을 건넨다.
아들! 오.. 너는 계획이 미리 다 있구나!
무계획이 완벽한 계획이라 말하는 기택(송강호)은 기우(최우식)가 세운 계획 속에 완벽히 녹아든다. 물론 그 속에 녹아든 무계획의 행동이 끝내 완벽한 계획을 완성하지만 말이다. 즉 기택(송강호)의 계획에 없던 행동들이 낳은 비극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말미는 끝내 기택(송강호)의 무계획이 완벽한 계획임을 보여준다.
장고 끝에 악수를 뒀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말하는 기택처럼 살아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물론 그 결과들이 생각지도 못한 계획을 만들어 냈고, 그 계획에 맞춰 생각지도 못한 일련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말이다.
펜대 굴리며 대가리만 썼던 수십 년의 순간 덕분에 때 묻지 않는 순수한 영혼을 단련하는데 꽤나 많은 생채기가 났다. 와.. 그동안 내가 쌓아 왔던 경험치는 버섯 먹은 슈퍼마리오가 선인장 밟아 짜부 나는 정도밖에 안됐구나 싶었다. 인생 끝판왕을 만나려면 수많은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와 씨.. 쫄지 말아야지. 쫄면도 아니고..
소 발에 쥐 잡기로 얻어걸려도 쥐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마인드는 전적으로 나와 맞진 않지만, 소 발에 쥐라도 잡으려면 계획이 있든 무계획이든 움직여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 대가리만 쓰지 말고 움직이자고. 결과는 무조건 "준아! 오, 너는 계획이 미리 다 있구나!" 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