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 가는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1989년도에 컴퓨터를 처음 만나게 된 이후 지금까지 30년 간 컴퓨터를 안 쓴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군대에서의 2년만 제외한다면요.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와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부팅되는 동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 버릇은 제가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나서야 사라졌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데스크톱을 더 이상 안 쓰기도 했지만.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딸이 태어나고 나서는 더더욱.


지금 생각하면 좀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아니 회사에서 10시간이 넘게 컴퓨터 화면만 보고 집에 들어와서 또 컴퓨터를 켠다고?

차라리 소파에 벌러덩 누워서 TV나 보지. 체력도 좋다.




작년에 아내와 딸과 함께 일주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갔습니다.

여러 일정들이 있었지만 사실 하나 빼고는 관심 없었습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 가는 날.

아침부터 설렜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이라는 곳에 와서 이렇게 좋았던 적이 있나?

마음속으로 헉하는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다시 로딩되었습니다.


왜 그동안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들은 사진으로 남겨놓지 않았을까?

나는 사람들보다 컴퓨터를 더 사랑했는데.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다시 한번만이라도 그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지금 쓰는 컴퓨터들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놔야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도록.

앞으로 또 30년이 지난다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컴퓨터가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PC통신의 역사. 저는 1995년에야 처음 접했습니다. 무료로 쓸 수 있었던 키텔.
페르시아의 왕자 1
고인돌

눈물이 살짝 터져 나올 뻔했던 화면.

바로 제가 쓰던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로 띄운 고인돌의 시작 화면.

이 흑백 화면을 보니 고인돌의 배경 음악. 스페이스바를 두들기며 딸깍 거리던 소리와 손가락의 감촉. 어릴 적 저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컴퓨터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갈 듯이 게임을 하던 나.

이런 저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돈이 많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넥슨의 창업자는 저보다도 컴퓨터를 훨씬 더 좋아했고 추억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박물관도 만들었겠죠.

덕분에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내 첫 번째 컴퓨터, 삼보 트라이젬 XT

내 두 번째 컴퓨터 486DX2-50

내 세 번째 컴퓨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