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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인생 30년

며칠 전 물난리가 난 직후 서울시에서 앞으로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를 해서 좀 놀랐습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물난리가 나고 이틀 만에 정책이 나오다니 과연 고민을 얼마나 하고 하는 말일까?

반지하 집이 20만 호나 있다는데 어쩔 생각이지?




반지하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잊혔던 옛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반지하 인생 30년.

29살이 되어서야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뭐야, 나 인생의 사분의 삼을 반지하에서 살았잖아?


여름이 되면 이부자리가 축축할 정도로 습기가 많았던 방.

천장과 벽지 곳곳에 있던 곰팡이들.

불을 켜면 후다닥 도망가는 바퀴벌레들.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서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다시 살라면 이제는 못 살 것 같지만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살았던 집. 좌측에서 첫 번째 문. 가리봉동.


다행히도 홍수 피해를 겪은 적은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어머니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 문래동 반지하에 살 때 집에 물이차서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옷도 못 챙겨 입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그 이후로는 지대가 높은 곳에서만 살았다고.

아, 그래서 우리 집은 항상 언덕에 있었던 건가?


https://www.youtube.com/watch?v=bx_l6lMQzQw&t=1431s

이번 홍수 사태에 대한 영상을 보다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시장이 물에 온통 잠겨 집기들과 생물들을 몽땅 버려야 하는 상인들.

반려 동물을 구하러 물에 잠긴 집에 다시 들어가다 사고를 당한 분.

반지하 집에서 물이 점점 차오르는데 빠져나갈 수 없었던 일가족.

얼마나 당혹스럽고 무서웠을까.


나래이션 중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무심하게 흐르는 물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어려운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30년이나 반지하에 살았으면서도 이제 좀 편하게 산다고 그때의 기억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나 또한 서울시 정책을 비난만 하며 반지하 주택에 살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무심했던 건 아닐까?


앞으로 기간을 충분히 두고 진행할 생각이라 하니 서울시가 좋은 대책들을 만들 수 있도록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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