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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짜리 첫 차 이야기

100만 원짜리 중고차를 타고 다니는 30대 건물주

저는 33살 때 첫 집으로 8억이 넘는 건물을 샀고, 첫 차는 35살 때 회사의 같은 팀 동료에게 100만 원을 주고 15년 된 중고차를 샀습니다.

100만 원짜리 중고차를 타고 다니는 30대 건물주.

참 밸런스가 안 맞죠? 지금 생각해보니 저도 웃깁니다.


오늘은 갑자기 떠오른 첫 차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차를 사기 전에 집을 사야 돈을 번다 같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주위 친구들이 차가 지나가면 무슨 차인지 모델명을 탁탁 맞추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못하는 일이거든요.


제가 집보다 차를 늦게 샀던 건 미리 짜 놓은 인생 계획 따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운전하는 게 무서웠달까요.

회사에 다니기 시작할 때쯤 되자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위에 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차는 없더라도 다들 운전은 할 줄 알더라고요.

30살이 넘고 나서는 운전을 못한다는 것이 점점 압박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어디 워크숍을 간다거나 누가 술을 마셔서 저에게 운전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게 참 싫었습니다.

"나 운전 못해..." 하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거든요.


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는데, 35살 때 드디어 계기가 생깁니다.

당시에 저는 회사에서 맛집 어플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팀 동료들과 이견이 생겼습니다.

어플을 켰을 때 몇 킬로미터를 반경으로 해서 맛집들을 보여줄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3km를 기본값으로 하자고 주장했고, 저는 1km를 주장했습니다.


"3km는 너무 먼 거리다. 갈 수가 없는 거리다."


그러자 다들 개떼같이 저를 몰아붙입니다. ㅋㅋㅋ

"그게 뭐가 멀어~ 맛집 다닐 때 차로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XXX이 운전할 줄 몰라서 그래~"


사소한 일이어서 당시 친구들은 기억도 못할 것 같은데, 저한테는 인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경험은 내가 하기 싫더라도 억지로라도 해봐야겠다. 그래야 대중의 눈을 가질 수 있겠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씨바, 이번에 진짜 차 사고 만다.


당시 같은 팀의 친구가 점심때마다 본인의 차로 저를 운전 연수시켜줬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훨씬 늦어졌을 겁니다.

한 일주일 정도 해보니 뭐야 별거 없네, 자신감이 좀 붙습니다. 이제 차를 하나 사도 되겠습니다.


회사의 다른 친구 하나가 자기 와이프가 운전 연습하던 차가 있다며 100만 원에 가져가랍니다. 아주 잘됐습니다. 이제 주차장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당시에 저는 주차 자리도 없는 원룸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복비도 물어줘 가며 과감하게 근처에 새로 지은 오피스텔로 이사를 합니다.

차량등록사업소에 같이 가서 차를 인수인계하고 먼 길 운전하기 무서워서 그 친구에게 우리 오피스텔까지만 좀 운전해달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첫 차. 2000년식 베르나.




그렇게 저는 35살에서야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운전을 시작하고 나니 정말 못 보던 것들이 보입니다. 우선 제 건물로 들어가는 대로변 도로와 골목 안의 도로가 너무 나쁜 것이 바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골목이 살짝 오르막인데 120도 정도 꺾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게다가 도로 폭도 4미터밖에 안됩니다. 아직도 차로 골목길 올라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ㅋㅋㅋ

이런 진입로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당시에는 운전 경험이 없다 보니 이런 걸 전혀 모른 채 건물을 덥석 사버렸습니다. 물론 그렇게 겁 없이 샀으니 좋은 시기에 집을 살 수 있었던 거지만, 너무 안일한 구매 결정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네요. 지금 다시 예전의 저를 만나면 혼내주고 싶습니다. ㅋㅋ


저는 이때 이후 새로운 경험의 가치를 높게 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같으면 돈 아깝거나 마음이 불편해서 안 할 행동들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여행 매년 3번씩 가기(이때까지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이 다녀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가기 싫은데 그냥 억지로 갔습니다.)

애플 워치 같은 신제품 나오자마자 써보기.

퍼플카드 같은 고급 프리미엄 카드 써보기.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 타보기.

안 가본 밥집에 가서 밥 먹기. 안 가본 길로 다니기.

돈만 날리고 별 배움이 없었던 것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이런 돈 낭비도 혼자 결정으로 못하게 되긴했습니다. ㅋㅋ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잡스런 얘기들을 꺼내봤네요.


100만 원짜리 첫 차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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