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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링 입고 다니다가 굴욕 당한 썰

부동산과 경찰서에는 정장을 입고 가라

저의 이삿짐을 보신 분들은 아셨겠지만 저는 실용주의자입니다.

가구를 고를 때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옷을 살 때도 디자인이나 색감보다는 움직이기 편한 옷을 고릅니다.


저의 대표 옷차림은 추리링 바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 다닐 때부터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까지, 변함없이 1년에 300일 정도를 입고 다닌 옷이 아디다스 추리링입니다. (결혼 전에는 1년에 100일 정도 입고 다녔는데 결혼 후에 300일로 늘었습니다 -.-)


길에서 이거 입고 다니는 얼간이를 본다면 저를 떠올려주십시오...


제 주변의 지인들은 저를 잘 알고 있어서 이런 차림으로 다닌다고 뭐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신경 안 썼겠지만요.


하지만 지인들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원룸 공실이 안 빠져서 동네 부동산에 시장 상황 좀 알아봐야겠다 하고 출동한 날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디다스 추리링과 나시를 입고서요.


저희 동네에 있는 부동산 열 군데 정도를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방을 내어놓으러 왔다는데 다들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원룸 방 하나 내어놓으러 왔는데요."

"아, 네."

"네, 보증금은 얼마, 월세는 얼마이고요."

"(건성건성) 집주소랑 연락처나 불러주세요."

"아.. 주소는 서울시 어쩌고..."

"(건성건성) 네 손님 오면 연락드릴게요."

"네? 관리비도 아직 얘기 안했는데요, 관리비는 얼마고요, 주차도 가능하다고 해주세요. 그리고 또..."

"(건성건성) 네, 손님 오면 연락드릴게요. 집주인 연락처는 혹시 있나요?"

"제가 집주인인데요. 제가 건물주입니다."

"......"


분위기가 싸해집니다. 부동산 아저씨는 너무 막말했다 싶었는지 멋쩍어합니다.

기가 막히게도 다른 부동산 모두 하나 같이 이렇습니다. 약간 굴욕감 마저 듭니다.

제가 나이도 어려 보이고 추리링바지와 나시를 입고 왔으니 원룸에 살다 중간에 방 빼려는 세입자로 생각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건 그렇습니다 ㅋㅋ)


다들 하나같이 이러시니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미리 말하는데 저 건물줍니다." 하고 인사해볼까 생각해봤는데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건 차마 못했습니다. ㅋㅋㅋ


안녕하세요, 건물줍니다. 원룸 내놓으러 왔습니다.


이전에 경찰서에 고소장 제출하러 갔다가 30분 동안 실랑이 한 이야기도 했었는데, 사실은 그날도 추리링에 나시를 입고 갔었습니다. ㅋㅋㅋ

아마 옷을 잘 차려입고 갔더라면 그런 실랑이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필요할 때는 옷차림도 좀 신경써야겠습니다.

나이키 추리링을 새로 사서 입어 보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ㅋㅋ


추리링 입고 다니다가 굴욕 당한 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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