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산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너는 어떻게 건물을 사게 됐니?"
주변의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제 직업은 프로그래머입니다. 20대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중소기업, 대기업, 스타트업들을 두루 겪어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다닌 모든 회사들의 주식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사주, 스톡옵션, 시장 매입, CB 전환, 구주 매입) 확보한 뒤 보유했었는데요. 소소한 이익을 얻은 것도 있었고 완전 대박 이익 그리고 완전 망함 까지. 여러 경험들을 겪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언젠가 하나씩 해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건물주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보통의 회사원과 다를 점이 없었습니다. 달랐던 점을 하나 꼽자면 제 머릿속의 80퍼센트는 프로그래밍과 회사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책도 컴퓨터 책 외에는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다른 주제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런 제가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저도 신기합니다.
하루는 주말에 서울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갔습니다. 아마 이 날이 전환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당시 회사 근처에서 혼자 살면서 일에 정신이 팔려서 본가에 잘 못 가고 있던 시절인데 아마 강아지가 무척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 본가에 살 때는 몰랐는데, 오랜만에 오니 동네가 낯설게 보입니다.
오랜만에 보면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또 이런 순간은 소중합니다.
제가 그동안 강남, 판교, 분당 등 설계가 잘된 도시에서 지내서 그랬을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동네가 굉장히 낯설어 보이고 낡아 보였습니다. 도시가 죽어가는 느낌입니다.
무슨 중국어로 써진 간판들도 하나씩 늘어나고 버스 안에도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온통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전혀 달갑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이사 갈 집 좀 알아보시라고 넌지시 말했습니다.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두세 번 했던 게 기억나는 걸로 보아 아주 가볍게 툭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했던 말도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는 실행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 갈 집을 알아 보신 게 아니라 웬 원룸 건물을 투자하자고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참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이사를 가자니깐 무슨 집을 사자 그래요.
처음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것저것 매물들을 계속 알아보면서 재미를 들리고 결국 꽂히셨는지 저를 계속 귀찮게 하십니다.
그래 어떤 건지 한번 설명이나 해달라 합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월세를 매달 220만 원씩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합니다.
실제 투자금도 얼마 안 합니다. 건물 가격이 8억 초반이었는데, 전세보증금이 4억 5천여만 원이 있었고 이전 건물주의 대출 2억 4천만 원을 승계받으면 1억 3천여만 원 정도를 주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는 제가 모아둔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면 2013년 당시는 부동산 거래가 없어서 빚내서 집을 사라고 하던 시기였습니다. 거래를 많이 하라고 정부에서 취득세도 한시적으로 깎아줬습니다. 저는 이런 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7월 전에 사야만 취득세를 할인받을 수 있다며 저를 꼬십니다. 그래 봤자 800만 원 정도 아끼는 거였습니다만 저는 맘이 또 혹합니다.
저는 집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의도치 않은 상황이 영 달갑지 않지만, 어쨌든 집을 한 번 보러 가기로 합니다.
방 몇 개를 둘러보고 건물 주위도 둘러보고 한 15분이나 봤을까. 그게 다였습니다.
뭐 부동산도 볼 줄 알아야 보지요. 눈만 떴을 뿐이지 실상은 하나도 못 본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이 다 체크하셨다면서 괜찮다고 하십니다.
지금 보면 많은 허점들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건물을 사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강하게 권유를 하시고 본인이 잘 관리할 수 있다 하시는 말을 믿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당시 다니던 회사의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게 크게 잘 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만에 하나 건물 산 게 잘못돼도 별 일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이 결정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저의 사업을 하나 시작한 거였습니다. 말의 무게가 참 다르죠?
그때부터 제 삶이나 사고방식들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게 과연 잘한 투자일까요?
글쎄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십 번도 더 해봤던 것 같습니다.
조사를 너무 안 하고 안일하게 판단했던 점에서 저는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시에 제가 조금 더 깐깐하게 조사하고 협상을 했으면 1억 정도를 더 싸게 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안 사거나.
이후에 저는 스톡옵션을 행사하면서 실제로 꽤 큰 차익을 얻었는데요, 그 차익들을 실현해서 건물 대출 갚고 전세금 빼주는데 재투자했습니다. 만약 건물을 안 사고 주식도 안 판 채 계속 보유하고 있었으면 저는 아직도 프로그래밍 밖에 모르는 중년의 남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부동산으로 번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가만히 앉은자리에서 벌었을 테고요.
만약, 아파트를 샀다면 어땠을까요? 당시 아파트를 샀으면 눈감고 샀어도 2배 차익을 그냥 올렸을 겁니다. 저는 힘들게 형사 소송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면서 편하게 돈을 벌었겠지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후회되는 점이 참 많은데요, 한 편으로 저는 이 투자로 많은 것을 배웠기도 합니다.
저는 프로그래머에서 사업가로 관점이 넓어졌고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게다가 그냥 얻어 걸린거지만 매입 시기 만큼은 완벽했습니다. 제가 밸류에이션 능력이 없어서 가격을 잘 협상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아주 좋은 시기에 샀기 때문에 이익이 많이 났다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승계 받은 대출 이자가 무려 5.2퍼센트 였는데, 금리가 이후로 꾸준히 내려간 것도 행운이었다 할 수 있고요.
수익률로 생각해봐도 연평균 10%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으니 뭐 그럭저럭 괜찮았던 투자였다 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