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첫 방 빼려고 개고생 한 이야기

안일했던 투자를 만회하기

요새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죠. 미친 가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이런 생각은 2년 전쯤에도 같았습니다. 당시에도 너무 많이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그 가격을 뚫고 계속 올라가네요.


제가 건물을 산건 2013년 중반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좋은 시기도 없었습니다.

호갱노노에서 아무 아파트나 찍어보면 이런 그래프를 볼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들을 보면 2017, 2018년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게 신의 한 수였다 라는 이야기를 가끔 봅니다. 저는 괜스레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2013년에 샀는데 ㅋ


저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제가 바로 투자의 귀재........... 는 개뿔.


개뿔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가치투자? 내재가치? 시장의 분위기? 교통? 땅의 종류? 건축물대장? 이런 것들 하나도 모르던 때였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요. 말 그대로 그냥 뭣도 모르고 덥석 샀습니다.

여기엔 좀 더 말할 내용이 많은데요, 언젠가 다른 글로 풀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덥석 사버리고 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월세를 받으니 좋았습니다. 방이 많아서 월세도 자주 들어옵니다. 아침에 눈 뜨면 핸드폰을 열어 메일이랑 이것저것 확인하지요? 월세 들어왔다는 입금 문자를 보면 그렇게 맘이 좋습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시간이 흘러갑니다. 2013년 8월쯤이었을 겁니다. 처음으로 세입자 한 분이 이사를 나갑니다. 전세로 살고 계시던 분이었는데 이번에 월세로 바꾸기로 합니다.


부동산에 연락해두고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아니,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방 보러 온다는 연락이 한 번 없습니다.


허걱 싶습니다.

회사 일로 정신 다 쓰고 있는데, 이런 것 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습니다. 너무 성급하고 안일하게 샀다는 후회를 처음으로 합니다.

그런데 신경을 안쓸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제가 가진 돈을 다 투자했는걸요.


저는 하루하루 공실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 공부를 합니다.

피터팬이라는 네이버 카페가 있고 여기서 원룸 직거래가 많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잘 이용하면 부동산에 의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잘하는 건 컴퓨터를 다루는 일입니다.

주말 동안 서버를 구축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사용자 입장에서 궁금한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고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둡니다. 사진도 물론 많이 올려둡니다.


피터팬 카페에는 사진을 1장만 올리고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연락이 오기 시작합니다. 방을 보여주러 갑니다. 부동산을 안 끼고 하니 다 저나 어머니가 직접 해야 합니다. 한 여름이라 땀이 뻘뻘 납니다. 다섯 번쯤 보여주었나. 몇 번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다들 계약하지 않고 그냥 갑니다.


나 이제 망한 건가?


충격스럽고 좌절스러웠습니다.

저에게 집을 판 사람이 괜히 원망스럽습니다. 방은 금방 금방 잘빠진다며!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제가 아닙니다. 아니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고민해봅니다.


방 구경 한 뒤 계약 안 하고 그냥 돌아간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이유가 뭐냐고 물어봅니다. 보통 집주인들은 부끄러워서 잘하지 못하는 행동이지만, 자존심 조금만 죽이면 이런 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방이 작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가격은 적당한 편이랍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빠르게 배워갑니다.


홈페이지 내용을 고칩니다. 방 평수도 실제와 같이 적어두고, 사진도 새로 찍어서 올립니다. 과장하는 부분이나 오해할 만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잘 고쳐서 씁니다.


한 번 약속을 잡고 방을 보여주러 가는 일이 저에게는 큰 비용이라 이 비용 또한 아끼고 싶습니다.

이전에는 방 보러 온다는 사람 있으면 하는 일 접어 두고 달려갔는데, 이제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 2시 정도로 시간을 정해 두고 보러 오라고 합니다. 이제 한 주에 한 번씩만 보여 주러 가면 되니 훨씬 편해졌습니다.


시간 약속을 정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더라도 모두 같은 시각에 오라고 약속을 잡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방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심리적으로 경쟁심을 갖게 되고, 계약을 더 쉽게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가 집을 구하면서 실제로 겪어본 경험으로 인해 알 수 있었습니다.

오후 2시 정도로 잡은 것은 집이 가장 밝은 시간에 보여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저녁 늦게 방을 보러 와서 동네가 무섭다는 피드백도 받았었는데, 만약 낮에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마치 스타트업을 운영하듯이 여러 가지 포인트를 관찰하고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개선합니다.


그리고 가을쯤이 되어서 드디어 기다리던 첫 월세 계약을 마칩니다.

계약서를 쓰고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기뻤던지 어머니와 하이파이브를 착! 하면서 서로 함박웃음을 짓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는 꽤나 평탄했습니다.

부동산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계약서도 제가 직접 쓰면서 공실 걱정 없이 세입자를 50명 이상 바꿔가며 운영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전략이 잘 통하지 않아 공실이 2개 생겼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월세 꼬박꼬박 받는 부분만을 상상하며 부러워 하지만, 건물주는 마치 기업을 100% 소유한 경영자와 같습니다.

그만큼 많이 고민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별 고민 없이 태평하게 부동산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지금 어땠을까요?

글쎄요, 그건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