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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방수 공사 썰 - 2편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공부를 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서 견적도 쉽게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편 보기]

회사를 하루 휴가 내고 건물 근처에 방수 공사를 하는 가게들에 찾아갑니다.

이때가 2018년 6월이었습니다. 따릉이를 하나 빌려서 열심히 돌아다닙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습니다.


막상 방수 업체 가게 문 앞에 서니 떨립니다.

이런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은 항상 손님이 호구 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탐색전을 합니다. 손님 또한 호구처럼 보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잘 모르겠는 데요나 알아서 해주세요 같은 얘기를 지껄여선 절대 안 됩니다.


열심히 공부했으니 자신 있게 말하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가게 문을 엽니다.

"저희 집 옥상 방수를 좀 해야겠는데요. 그라인더로 바닥갈기도 할꺼고요. 중도는 1액형 말고 2액형으로 해주세요. 제품은 2100KS로 하고요."

뭐 이딴 소리를 내뱉으면서 쓱 살펴보니 이 놈이 얼간이가 아니구나 하는 주인의 표정이 보입니다.

3개 가게 정도를 들렀는데 다들 비슷하게 250만 원 정도를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어머니가 찾아갔던,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노루표 페인트를 갑니다. 그 400만 원을 부른 집입니다.

이미 이 동네에 있는 가게 다 돌아보고 견적을 받아왔다. 공사 맡아서 하고 싶으면 좋은 조건을 제시해보라 합니다.

사장님이 고민하는 척하더니 230만 원을 제시합니다.


230만 원. 똑같은 집을 공사하는데 누구에게는 400만 원을 누구에게는 230만 원을 달랍니다.

50퍼센트 가까이 싸지니 기분이 좋지만 한 편으로는 호구들에게 얼마나 받아먹는 거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 가격이 2배씩 왔다 갔다 하는데 믿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보통 이러면 가게 주인들은 재료나 인건비를 아껴서 어떻게든 더 이익을 내려고 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계약서도 간이 영수증 뒷면에 대충 가격만 쓰고 두리 뭉실 넘어가려고 하길래, 재료는 뭘 쓸지 며칠 동안 작업할지도 적어달라 했습니다.


공사는 언제 시작할꺼냐니깐 비가 올 수도 있으니 그건 확정해줄 수가 없고 시작하기 3일 전에 알려주겠답니다.

7월이 되면 장마가 시작될 거라 제 마음은 초조한데 영감님은 곧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랍니다. 걱정 붙들어 매고 있으면 다~ 알아서 잘해주겠다고.


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같이 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른 가게들은 안 그럴까요? 제가 들른 모든 가게가 다 똑같았습니다. 차라리 이 곳이 노루표페인트 간판을 달고 있기나 하지 다른 곳들은 간판도 하나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영세한 곳들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사 시작이나 빨리 해줬으면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7월이 되고 비가 자주 내리기 시작합니다. 영감님은 이제 날씨가 더워졌다며 장마가 끝나고 추석 지나면 공사를 하잡니다. 이렇게 더운데 공사하면 사람 죽는다고.


"추석 지나고? 씨발 새끼가 진짜"


마음속에서 쌍욕이 튀어나옵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다른 데를 알아보려니, 장마철이라 바로 공사해줄 업체가 없습니다.


그 해 여름은 내내 일기 예보만 보며 보냈습니다.




드디어 여름이 어느 정도 지나고 9월 10일 공사가 시작됩니다. 이것도 계속 재촉해서 시작된 날짜입니다.


계약 시 5일에 걸쳐서 작업을 해주기로 했는데, 공사 시작 날이 돼서 갑자기 이것저것 몰아서 해서 이틀 만에 끝내겠다고 합니다.

우려했던 일들이 우려했던 지점에서 한치도 비껴가지 않고 생깁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무슨 약속을 했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버릴까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간이 영수증 뒷면에 쓴 계약서를 봅니다. 단어 몇 개만 찍찍 쓰여 있는 계약서가 너무 한심해서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계약서로 일을 진행한 저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법적인 효력이 있을 만큼의 구체적인 계약서를 요구할 수도 없는 현실도 화가 납니다. 그렇게 빡빡하게 굴면 공사를 안해줄테니까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작업을 할 거면 화를 내지 말고 잘 설득해서 진행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빨리 다른 업체를 알아봐야 합니다.

후자를 선택해도 또 똑같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저는 잘 달래기로 결정합니다.


계약서에 5일 하기로 써놓고 2일 만에 일을 끝낸다니 말이 되냐, 그렇게 하면 페인트가 붙기는 하냐. 최소 3일에 걸쳐서 하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놓고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회사도 휴가를 냅니다.

재료들도 꼼꼼하게 하나하나 다 확인을 하고, 작업 과정에서 빠트리는 것 없는지 대충 하는 것 없는지 감시를 합니다.

이렇게 감시를 하면서도 일하는 분들이 기분 나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집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하는 건 이런 일들이 집 짓는 내내 반복되기 때문일 겁니다.


첫날은 그라인더로 바닥을 갈고, 둘째 날 오전에는 하도를 하고 오후에 중도를 발랐습니다.


점심은 설렁탕을 먹으면서 수육 3만 원쯤 하는 걸 시켜드렸는데, 보통 일할 때보다 좋은 걸 시켜드린 건지 아주 좋아하십니다. 일도 열심히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셋째 날 상도 작업만 남았습니다.

첫째 둘째 날은 제가 회사를 휴가 내고 열심히 감독을 했지만, 셋째 날은 제주도로 출장이 있어서 감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구~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유. 우리가 아주 그냥 매끈하게 잘해놓을 텡게~


허허 네~ 웃으며 대답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믿음이 안 갑니다.

어머니에게 잘 감독해달라고 신신당부드리고서 저는 출장을 갑니다.

출장 가서도 계속 사진을 보내달라며 체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옥상 방수 공사가 끝이 났습니다.

페인트가 다 벗겨져서 보기 싫던 바닥에서 예쁜 초록색 빛이 나는 걸 보니 마음이 좋습니다.



그런데......


11월의 어느 날, 3층의 세입자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비가 왔는데 이전보다 훨씬 많이 샌답니다.

으.. 으악. 안돼...

건물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 건물의 모서리 쪽이 삥 둘러서 전부 갈라져있습니다.

모서리가 다 갈라져 있다... ㅠㅠ

하, 미쳐버리겠습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페인트 사장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 전화를 받는지 쩝쩝대는 목소리로 아주 능청스럽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게 왜 갈라져있지?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게 갈라져있다고 물이 거기서 새는 게 아닐 건데?"

"생각을 해보세요, 방수 공사를 했는데 물이 왜 샙니까. 물이 새면 방수 공사가 아니죠~"

"물은 외벽 같은 데서도 샐 수 있어요."


이딴 소리를 지껄입니다.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쌍욕이 나오는걸 꾹 참고, 당장 와서 갈라진 부분 확인하고 메워주시라고 조용히 말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방수 공사를 했는데, 공사를 하기 전보다 더 많이 물이 샌다니. 기가 막힙니다.

계약서는 허술하게 썼지만,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질 가능성도 고려하고 계약할 때부터 핸드폰 녹음기를 켜고 모든 대화와 통화를 녹음했었습니다. 이 일이 제대로 처리가 안되면 정말 손해 배상 청구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개싸움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다행히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보수가 끝나고 나서는 물이 새는 일은 없었거든요.

보수 공사 중.

한 번에 똑바로 하지, 저따위로 조잡하게 두 번에 일한 게 영 맘에 안 들고 찜찜합니다.

앞으로도 왠지 금방 다시 고장 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떻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 물이 더 새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다행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옛 생각이 나는데 또 화가 나서 몇 번 울컥 했습니다. ㅋㅋㅋ

이런 기술적인 부분에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게 건물주는 참 피곤한 직업입니다.


옥상 방수 공사 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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