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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뚫기의 추억

세입자에게 잘해야 합니다. 변기 안 막히려면.

막힌 변기 뚫어 본 적들 있으십니까?


바로 지난주에 있던 일입니다.

늦은 밤이었는데 아내가 변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아뿔싸...


아까 화장실에 보이던 휴지 뭉탱이를 변기에 툭 버리고 물을 내렸던 기억이 빠르게 로딩됩니다. 그게 휴지가 아니었단 말이야? 어쩐지 손으로 잡을 때 감이 좀 이상한 것 같더라니..


저는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차를 타고 24시간 마트에 가서 뚫어뻥을 사 옵니다. 자정이 넘은 새벽 시간에 변기를 첨벙첨벙 푸쒸 푸쒸 쑤시고 있으니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건물주를 7년여 하면서 변기 막히는 경험은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한 열 번 정도 되려나요.

왜 막힌지는 알 수 없지만 건물 내에 준비해둔 뚫어뻥으로 셀프 처리를 시킨 경우가 많았고, 제가 가서 처리해준 적도 있었습니다.

라면 먹고 버렸는데 물이 안 내려간다고 어째야 하냐고 연락 줬던 친구도 있었네요. 다행히 뚫어뻥으로 셀프 처리를 시켰습니다만 연락받는 주인 입장에서는 마음이 안 좋습니다. 변기가 음식물 쓰레기통이냐?


뭐, 이 정도 일들은 가볍게 있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7년에 있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라오스에서 찾아온 여자 게스트였는데요.


방이 비고 난 뒤 청소를 하는데 변기 물이 안 내려가는 겁니다.

뚫어뽕으로 아무리 철퍽철퍽 뿌쉬뿌쉬 쑤셔봐도 안됩니다.

할 수 없이 변기 뚫어주는 곳을 찾아 전화를 하고 기다리니 한 젊은 남자가 뱀처럼 생긴 장비를 들고 왔습니다.

변기 관통기

열심히 돌리는데, 뭔가 잘 안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5분 정도 지났으려나.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제가 다른 방법으로 할 테니 그냥 가시라고 하니 더 열심히 합니다. 잘 안되니 열이 받아서 그러는 건지 어떻게든 뚫어보려고 그러는 건지, 관통기를 아예 변기에 팍팍 때려가면서 어떻게든 해보려 합니다. 저러다 변기 다 깨지겠습니다. 이 새끼가 일부러 그러나, 목 구녕까지 쌍욕이 나오는 걸 참고 조용히 집에 보냅니다. 얼마나 세게 쑤셔댔는지 변기 타일 갈려나간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변기 막힌 건 어떻게 하나 싶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이고 왜 이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수리를 몇 번 해주셨던 분에게 연락했는데, 이것 저것 해봐도 안됩니다.

결국 변기를 다 뜯어내고서야 고쳤습니다.


아니 그런데 세상에, 신문지들과 화장품들로 막혀있었다고 턱 꺼내서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립스틱 같은 화장품 용기들 그대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린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미움을 사면 세입자들이 이사 갈 때 변기에 이것저것 잔뜩 넣고 변기를 막히게 하고 간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 일이 저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미움산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체크아웃할 때는 이제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 뒤, 근처로 간다길래 주소를 알려 달래서 확인해보니 언덕이 심한 곳이라 고생하겠다 싶어서 제가 짐을 실어주고 차로 데려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친구를 내려다 주고 인사하며 돌아올 때, 그 친구 표정이 뭔가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왜 그러고 간 건지, 고의적이었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제가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친구를 기분 나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해도 신문지와 화장품들을 변기에 넣는다는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당시에 왜 그랬는지 안 물어봤던게 이제 와서 좀 후회됩니다. 다 해결됐으니 됐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 친구와 나눴던 에어비앤비 메시지를 열심히 뒤져서 찾아봤는데, 특별한 게 보이지 않네요.

그 친구의 다른 후기들이 더 생겨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이후로 에어비앤비를 이용 안했는지 후기도 추가된 게 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겠군요.




아참, 저희 집 변기는 어떻게 고쳤냐고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에 변기 뚫어주는 곳을 찾아 전화했습니다. 얼마냐 하니 4만원이랍니다. 오시라 했습니다.

위에 보이는 뱀처럼 생긴 관통기를 들고 오셨는데, 한 번 넣고 스윽 돌리더니 15초 정도만에 고쳤습니다.

4만원을 쥐어드리고 보냅니다. 집에 들어오고 나간 지 3분도 안 걸렸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호라... 요즘 회사도 그만두고, 낮에 시간이 많은데 변기 관통기를 하나 사두고 홈페이지 간단하게 만들어서 올리면 연락 좀 오겠는데?

찾아보니 변기 관통기 가격은 10,000원~40,000원 정도 합니다.

이거 뭐 한 번만 가면 바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아내가 절대 사지 말라는 킥보드를 하나 살 좋은 핑곗거리가 됩니다.

여러 집들을 다녀보면서 부동산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익성이 좋습니다. 가까운 곳만 다닌다면 시간도 거의 안 들어가니 용돈 벌이 하기에 참 좋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설거지하면서 생각해 보다가 몇 가지 단점을 떠올리고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무슨 단점인지는 굳이 적지 않겠습니다. ㅋㅋㅋ


변기 막힌 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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