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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매매의 추억

반대매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작년 코로나가 처음 기승을 부리고 주식 시장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매매를 당했습니다.


저도 태어나서 딱 한 번 반대매매를 당할뻔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의 스톡옵션을 실현하면서 그 주식대금과 세금을 내야 했지만, 현금이 없어서 증권사에 주식을 담보로 잡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금융 얼간이였습니다.

"대출로 진행해드릴까요?"라는 증권사 직원의 말에 아무것도 모른 채 "넵!" 하고 대답했죠.


주식이 입고되고 나서 주식을 바로 팔아 주식대금과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자를 내야 한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얼간이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이 기억납니다.

"야 1%만 올라도 돈이 얼만데. 이자는 그냥 월급으로 내면 되지."


그때 대출 이자가 약 2.5%~3%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년 동안 3% 안 오르겠어?'


이런 생각이었는데 주가는 제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더군요.

몇 달에 걸쳐 계속 하락했습니다. 쭉 하락하다가 한 번씩 희망 고문하면서 가끔 올라주기도 하고요.

매일 주식창을 쳐다보며 '아이, 그냥 바로 팔아버릴걸.' 하는 후회를 하다가도 주가가 오르면 '조금만 더 참으면 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가가 더욱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처럼 주식을 안 팔고 이자를 내고 있던 친구들은 다 저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시발, X됐다.'


그날도 주가가 곤두박질치던 날이었을 겁니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증권사 PB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도 주가가 많이 떨어졌어요. 계좌에 돈을 더 안 넣어놓으면 반대매매 당할 수 있어요."


저는 반대매매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직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새끼들이 내 주식을 강제로 팔아버린다는 말이구나!'

'담보로 대출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그때 통화하면서 머리가 쭈뼛 스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계좌에 월급과 월세 등 돈이 생길 때마다 넣을 수 있는 돈들을 계속 넣으면서 방어했고 극도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어떤 나라와 힘껏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반대쪽 내 영토에 또 다른 나라가 쳐들어올 때 드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회사 일만 신경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돈 문제까지 겹치니 가슴을 송곳으로 콕콕 찔려가면서 사는 느낌이었습니다.


다행히 이후 주가가 올라 문제는 잘 해결되었지만, 앞으로 제 인생에서 이런 경험이 다시는 없게 하고 싶습니다.




요즘 영끌해서 집을 산다는 말들을 합니다.

예전에는 특정 신체부위를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요즘은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더군요.


저는 영혼을 끌어모은다는 말보다 영혼을 판다는 말을 좀 더 좋아합니다.

대출받으면서 영혼을 판다는 말은 좀 과장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이게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출을 '영끌'로 받으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빚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퇴근해서 쉴 때에도,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도 돈 생각만 하게 됩니다.

요즘 제가 '나를 위해서 돈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한다면 당시에는 '빚을 갚기 위해서 나를 어떻게 쓸까' 생각했으니 앞뒤가 완전히 바뀐 셈입니다.

돈 몇천만 원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영끌'로 대출하면 영혼이 팔린 것 같은 이 감정을 누구라도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반대매매 사건 이후 주가가 회복했을 때 빚을 다 갚고 나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는데요. 그 이후로는 빚을 지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평안'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하고 가끔 생각해봅니다.

행복 수익률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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