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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어른이 가지고 놀수있는 가장 정교한 장난감

제가 첫 회사를 퇴사할 때 이야기입니다. 현재는 시가총액이 약 1,000억 원 정도 하는 IT회사인데 5년쯤 다니고 퇴사했습니다.

퇴사를 해본 적이 없으니 퇴사 통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속으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둘게요' 하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퇴사 통보를 하기 전에 몰래 다른 회사를 구하러 다니는 것이 좀 얍삽하다고 생각해서 결국 퇴사를 먼저 하고 다른 회사를 구했습니다.

백수로 지내면서 다른 회사를 구직하는 과정이 마음 편하지는 않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를 빨리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한다는 IT회사 대여섯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면접 보자는 연락이 두 군데에서만 왔습니다. 그중 한 곳에 합격해서 저도 대기업 경험을 시작했네요.


퇴사하기 전에 미리 회사를 구했으면 맘 편하게 제가 우위에 있으면서 구직 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제 손해를 감수하고 저렇게 용감한 결정을 했던 제 어릴 적 모습을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네요.

저런 용감한 선택들이 제 인생에서 몇 번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대부분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퇴사를 하면서 지금은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당시 본부장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기억이 납니다.


"30살이 넘어가면 사람들은 열정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너는 아직도 열정이 넘치는구나."

"에? 겨우 30살 조금 넘었는데 무슨 열정이 떨어져요."

"사람들 대부분이 30살 넘어가면 그래. 너는 흔치 않은 거야. 그 열정을 잘 간직해라."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열정이 식는다는 말은 좀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제 나이는 마흔이 조금 넘었는데요. 다른 것들을 포기해가면서라도 프로그래밍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더 이상 없습니다. 여전히 매일 코딩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편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아마 은퇴한 프로 축구 선수가 조기축구에 나가서 노는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요?


기억나는 또 한 가지 이야기입니다.


회사는 남자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야.


어떤 대화 중에 이 말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좀 더 크면 당구장이나 노래방 같은 곳을 다니며 즐거움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난감들은 몇 번 경험하고 놀다 보면 금세 질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경험이 쌓이게 되고 더 이상 이런 장난감들로는 재미를 찾을 수 없게 되는데요.

어른이 되어서도 재미있는 아주 정교한 장난감이라. 이 표현이 참 재밌었습니다.

그때보다 10년이 더 지나고 저 또한 다른 장난감들이 질리고 나니 이 말이 더 공감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사업하는 친구에게 해줬더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회사가 장난감이라니. 그 사람은 너무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회사라는 건 그런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인데..."


듣고 보니 그렇네?

하지만 관점과 표현의 문제일 뿐. 그분이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들의 생계 따위는 신경 안 쓰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여전히 이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최근에 앱 개발 수익이 늘어나면서 개인사업자를 법인으로 전환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15년 동안 제가 소득세를 얼마 내고 건강보험료는 얼마 내는지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다시 옛날 급여명세서를 보면서 아~ 이랬구나 깨닫고 있습니다.


지금 법인으로 전환하는 게 이득일지, 아니면 약간의 이득을 위해 너무 귀찮은 길로 들어서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드는데요.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차치하고 재밌게 가지고 놀 장난감 하나 만드는 건데 뭐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심지어 저는 직원을 뽑을 생각도 없으니까요.

이 선택 또한 훗날 돌아보면 저를 칭찬해줄 만한 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도 마지막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시기가 된 것이 좀 슬프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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