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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옆 집에서 벌을 키웁니다.

"옆 집에서 벌을 키우는데 가서 뭐라고 말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벌 때문에 창문을 못 열고 살아요."

"네? 벌이요? 벌을 키운다고요?"


건물을 산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세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벌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옥상에 빨래도 널 수가 없다고 하네요. 벌들이 빨래에 앉아 분비물이 묻어서요.


'아니, 서울 한복판 주택가에서 벌을 키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진짜 벌을 키우고 있습니다. 옥상 올라가 뒷집을 보니 마당에 벌통이 보이고 벌들이 날아다니는 게 보입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지? 언제부터 벌을 키웠던 거지?'


세입자와 뒷집 아저씨는 이미 몇 번 언성이 오간 것 같습니다.

세입자 말로는 뒷집 아저씨가 서울시에서도 양봉을 적극 권장하는데 왜 그러냐는 말까지 했답니다.


당연히 불법일 것 같은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도심 양봉이라고 검색하니 기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벌 키우는 '도심양봉', 괜찮을까

[취재후] ‘도시 양봉’ 취지는 좋지만…이웃들 벌쏘임 피해 어쩌나


도심 양봉이 좋다는 말도 있고 이로 인해 다툼도 많다고 합니다. 저만의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도심 양봉이라는 게 불법이 아니라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한참을 마음고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벌을 키우는 집답게 뒷집 아저씨는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걸 좋아하는 듯했습니다. 정원이 아니라 정글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지저분했지만.


이 정글에는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 뒷마당으로 나뭇잎이 떨어지곤 해서 저와 어머니가 가끔씩 치우곤 했죠.

낙엽은 그냥 두면 비가 올 때 배수구로 휩쓸려가서 배수구를 막아 버리기 때문에 귀찮아도 그때그때 잘 치워줘야 합니다.

가뜩이나 벌 때문에 열 받는데 나뭇잎 때문에 더 열 받습니다.

왜 우리가 이걸 치우고 있어야 하지?


가을이 지나고 11월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비가 온 다음에는 낙엽이 한 번에 떨어지곤 합니다.

아니 뒷집 어르신, 거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오?


뒷마당에 나가봤더니 낙엽 천지입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왜 우리 옆집에는 이런 사람들만 사는 걸까요?

혹시 제가 가만히 있으니깐 다들 절 호구로 보는 걸까요?

아니면 너무 사소하고 흔한 문제인데 제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걸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계속 호구로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오만가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책은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뒷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니 마침 아저씨가 계십니다.


저는 앞 집에서 왔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립니다.

이런 대화를 할 때는 예의 바르게, 그리고 웃으면서 말해야 잘 풀립니다. 마음속 전의가 상대에게 드러나버려서 일이 틀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다행히 분위기가 좋게 대화가 흘러갑니다.

저는 살며시 얘기를 꺼냅니다.

"저희 집 뒷마당에 낙엽이 너무 많이 떨어집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계속 치우시는데 이제 나이도 드시고 어깨도 많이 아프셔서 힘들어하십니다."

"아이구, 그래요? 미안해라..."

"저희 집에 오셔서 낙엽 청소를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손하게 말하되 할 말은 다 합니다. 와서 직접 치우라고.


아저씨께서는 선뜻 그리해주셨습니다.

100리터짜리 봉투와 장갑을 끼고 오셔서 열심히 낙엽을 치워주십니다.

저도 옆에서 거들며 대화를 좀 나눴습니다.

우리 집이 처음 지어질 때 이야기도 뒷집 아저씨에게 듣습니다.

이전 건물주와 뒷집 아저씨는 우리 집을 처음 지을 때 공사 문제로 많이 다퉜다고 합니다.

뒷집 아저씨는 저에게 "대화가 통하는 점잖은 사람"이 새로 주인이 돼서 좋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전 건물주는 뒷집 아저씨와 "점잖지 않게", "말이 안 통하는" 막싸움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옆집과의 스트레스에 지쳐서 저에게 집을 판 걸 수도요.


아무튼 이렇게 함께 청소를 하고 대화도 나누고 저는 감사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후로도 명절에 뒷집 아저씨와 옆 집의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덕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이런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뒷집에 벌통이 사라졌습니다.

나뭇가지도 정리를 좀 했는지 떨어지는 나뭇잎 양도 크게 줄었고요.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나뭇잎이 좀 떨어져도 이제는 더 이상 아저씨에게 내려와서 치워달라 말하지 않고 그냥 제가 청소합니다.

선의들이 몇 번 오가고 미움이 사라지니 이렇게 제 쪽에서 청소를 해도 호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화를 내고 싸워서 이기려고 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가끔씩 생각해보곤 합니다.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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