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내가 만난 사람들 (1)

by 일주일의 순이



안중근은 연해주나 두만강 너머에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해 풍문처럼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극동 해군항인데, 태산 같은 군함들이 정박해 있고 번화가에는 서양풍의 높은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 있으며, 거기 무도장에서는 살결이 흰 러시아 여자들이 먼바다에서 돌아온 선원들과 끌어안고 춤을 춘다고 했다. 술은 독한 화주火酒를 마시는데 찌르기가 면도날 같고 차가운 바닷물에서 나는 가재와 대구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고 다녀온 사람들이 말했다.

하얼빈을 읽는 중이다. 경건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다 위 장면에서 한참 멈춰 블라디보스토크를 생각해 본다. 우리랑 가까운 러시아 땅. 가까운 곳인데 우리랑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던 그 낯선 곳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그를 떠올려 본다. 그는 잘 살고 있을까?

내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간 건 2019년 여름, 한참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처음 부장업무를 맡은,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었고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준비를 가장 많이 해야 했던 처지였다.
다행히도 운이 좋게 여름이 되기 전, 나는 큰 시누집을 갔다가 시누가 2월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가이드를 소개받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나는 가이드를 카톡에 친구추가를 했고, 우리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 첫날은 밤늦게 도착해서 잠을 잔 것뿐이라 본격적인 여행은 두 번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비교적 작은 시내를 구경하고, 나름 유명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쇼핑센터에서 선물 등을 사며 오후까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이동을 했고 그곳에서 우리 여행을 가이드해 줄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인원이 많아서 차량 두 대로 움직여야 한다며 자기 직원 한 명을 더 데리고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처남이었다.
한국에서 그와 연락을 주고받고 일정을 공유하고 짠 사람이 나였기에, 자연스레 나와 그는 같은 차에 타서 일정을 조율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 장소보다 거기서 만난 한 명의 사람을 마음속에 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자술이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며 주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인이 아니다. 그의 조국은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은 현재는 중앙아시아이지만 한때 소련에 속한 곳이었으니 그가 러시아말을 잘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한국말은 어찌 배운 걸까?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인천에 일자리를 구하러 와서 가구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처남이 먼저 자리를 잡고 부른 것이었는데, 자술은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고 서글서글하며 인간관계가 좋아서 한국어를 처남보다 훨씬 빨리 익혔다고 한다. 그러다 무슨 연유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와서도 한국 관광객을 만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한국말로 인사하고 대화하며 한참 시간을 보내곤 했단다. 그러던 중 한 한국인이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안내를 부탁한 게 계기가 되어 가이드 일을 시작하고, 몇 달 후에는 처남과 본격적으로 여행사를 차려 일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의 유창한 한국어를 통해 듣게 되었고, 나는 그 외에도 그와 육아 이야기(그도 나처럼 아이가 셋이었다), 다른 사업 이야기 등을 들으며 차로 이동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나중에 뒤에서 우리를 보던 일행 한 분은 둘이 아주 오래된 친구 같아 보인다며 어떻게 그리 이야기가 잘 통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라고 했다.

여행은 3박 4일로 끝이었지만 그 후에도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간다는 친구, 지인에게 자술을 소개해 주었고 그는 할인된 가격으로 내 지인들의 여행 가이드를 해주었다. 엄청나게 바빠서 회사 규모도 커지고 숙박업도 시작해서 앞으로 계속 바쁠 것처럼 보여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코로나가 전 지구를 멈추게 했고 해외여행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당장 국내에서도 움직일 여유가 없던 시절, 어느 날 문득, 그가 생각났다. 여행이 타격이 제일 받은 사업 중 하나일 텐데... 막 시작하던 그 사업들이 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아이 셋은 우즈베키스탄으로 다시 돌아갔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괜히 내 동생 같고 지인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왜 나는 짧은 3박 4일 동안의 여행 동안 만난 그를 여기에 불러내어 떠올려 보는 것일까?
첫 번째는 그가 매우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인천에서 어렵게 가구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었던 이야기는 사실 내가 직접 처음 접한 해외 노동자 이야기였다. 마냥 힘들고 우울하리라 여겨졌던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간절한 꿈 이야기이고, 기쁨과 희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다. 매일매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정신없이 지내는 그의 삶에서 나는 자기 일에 만족하며 기뻐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

두 번째로 그는 세심하고 배려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점점 큰 규모로 사업이 성장하고 있었고, 전체적인 사업 관리를 하며 직접 가이드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디든 꼭 같이 다녔고 가던 곳마다 마주치는 한국인을 보면 마치 고향 사람 만난 것 마냥 반갑게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마지막 날, 고려인들이 스탈린 이주 정책 때문에 강제로 이주당하던 기차역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날이 좀 더웠고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목이 마르다며 물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이 워낙 시골이라 물을 살 수 있는 가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아서 얼른 공항에 돌아가서 먹자고 참고 있었다. 그런데 빨리 이제 공항을 가야 하는데 한참 동안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왜 안 오나며 조금씩 불만을 터트리는데 저 멀리서 그가 양손에 무겁게 무언가를 들고 오는 게 보였다. 물을 찾는 소리를 듣자마자 우리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멀리 물을 사러 다녀온 것이다. 양손에 가득 물병을 들고 땀을 흘리면서 늦어서 미안하다 말하는 그를 보며 우리는 또 감탄을 했다. 적다 보니 그때 그의 땀방울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사람을 아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만난 자술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아닌지 모른다. 다만 그의 적극적인 노력과 배려가 깃든 태도는 나에게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다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의 감동을 주었다.

혹시라도 그가 지금 힘들다면 꼭 다시 일어서서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를 하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뒤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다시 한번 더 가고 싶다. 그때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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