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 산에 끌려갔습니다(2)

아들이지만 선배입니다.

by 일주일의 순이



지난 글에 말했던 바와 같이 등산을 처음 따라갔던 당시 내 몸뚱이는 종합병원이었다. 그러니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구부러진 어깨에 잔뜩 앞으로 나온 목, 질질 끌리는 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두 발로 올라가는 게 힘든 순간에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역행하여 두 손까지 동원하여 두 손 두 발로 모냥 빠지게 기어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내려올 때는 산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개다리 댄스를 무료로 공연하는 꼴이다. 모냥이 빠지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나를 가장 움추러들게 만드는 것은

"저기..... 얘들아 조금만 쉬었다 가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애원해야 하는 순간이다.

우리 가족의 등산 순서는 아들- 남편- 그리고 그 뒷 꽁무니를 내가 따라간다. 내가 맨 위에서 쉬자고 부탁하면 남편이 아들에게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전하고, 아들이 저만치 가던 길을 내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와서 쉬었다가 가야 하기 때문에 그 민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전혀 힘들어 보이는 기색 없는 남자 둘이 헥헥 거리는 나를 기다려주는 그 순간, 멀쩡히 가던 길을 내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그런데 일곱 살 아들은 단 한 번의 면박 없이 나를 기다려준다. 더 나아가 본인은 이미 몇 번이나 오른 길이니 이곳을 잘 안다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등산을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는 거라고 응원한다. 그리고 나한테 여러 가지 꿀팁을 전수해 주었는데 그중 가장 귀 기울여 들었던 것은 '힘들 때 힘든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잠깐만!
나는 아들이 지퍼를 올릴 때, 운동화를 신을 때, 숙제를 늦게 할 때 이렇게 기다려 준 적이 있었나? 무안하게 재촉하고 구박하지 않았었나? 내가 이렇게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나? 게다가 힘든 순간을 넘길 수 있는 본인만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지혜라니.

선배 (先輩) 명사 1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ㆍ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

사전을 찾아보니 내가 아들보다 나은 건 나이 말고는 없나 보다. 나이를 먹는 것은 어떤 노력도 자격도 필요하지 않으니 결국 그것마저 헛 것 아닌가. 나는 마흔 가까운 세월 동안 힘들면 힘들다고 조금만 힘들어도 죽겠다며 투덜거리며 살아왔단 말이다. 그런데 힘들 때면 티를 내지 않으면 덜 힘들다니.

산에 가면 좋다.
건강에도 좋고 자연을 만나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좋은 것은 내 아이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와 학원 오가는 생활 안에서는 볼 수 없는 크고 넓은 모습을 자연 안에서 본다. 사람의 본성은 힘들 때 만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힘들어하는 사람을 품는 아량과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지혜를 보니 아들이지만 선배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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