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내가 만난 사람들 (2)

가장 쎈 놈, 가장 우아한 놈, 가장 말 잘하는 놈..

by 일주일의 순이


제목을 보면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살짝 따라 해 본 것인데 내 주변에 가장 강력한 자기장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세 사람을 오늘은 이야기하고자 한다.

원래는 가장 나중에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이었으나 엊그제 긴 시간 동안 만남을 갖고 온 터라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위 세 사람을 한 글로 묶어 이야기하고자 한 이유는 일단 내가 2018년에 한꺼번에 만났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벌써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 세 명이 엄청난 분위기를 풍기며 주변을 압도하며 걸어오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나는 쌍둥이를 낳고 3년이 넘는 시간을 육아휴직하고 복직하여 정신없이 근무를 했다. 누가 봐도 우왕좌왕하고 피곤에 젖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랬던 게 나는 짧은 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육아 시간’이라는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기에 늘 미친 듯이 일을 해야만 했다. 또 복직할 때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되어 일만 하고 퇴근하리라 다짐하였었다. 마음 맞는 사람을 찾으려 할수록 그것은 어려운 과제가 되어 풀리지 않는다는 걸 여러 차례 경험도 했었고, 기존에 인연을 맺고 있던 사람들과 만남도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는 저 세 명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조금씩 닮아가게 되었고, 의지하게 되었다.


먼저, 가장 쎈 분은 진짜 그 기가 대단하다. 눈빛에서 레이저가 나온다고 우스개처럼 말하는데 그녀가 집중해서 한 명을 바라보면(물론 비판적인 시각으로) 얼마 안 돼서 그 사람은 곧 어깨를 움츠려 들 정도다. 워낙 강하니 긴 말 하지 않고, 행동도 크지 않다. 그녀가 자주 하는 말은 주로 짧다. 예를 들자면 ‘그래서?’, ‘그런데?’, ‘왜지? 정도. 단지 그녀가 이런 면모가 있었다면 쎄다고 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녀는 일 추진력이 대단하다. 한 번 공략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낼 정도로 강하게 밀고 나간다.(하지만 혼자는 절대 하지 않고 반드시 주변 세력을 모아서 하기는 한다. ) 결국 관리자들도 그녀에게 나중에는 미리 의논을 하고 일을 결정할 때가 많다. 그녀가 사적인 일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공적인 부분에서 정의로운 면을 생각하며 움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그녀를 이야기할 때 '메기효과'를 언급한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현실을 직면하고, 권력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한 점에 동의한다. 내가 그녀를 안지 꽤 되었는데(사실 그전 근무지에서도 만난 사이) 날카로움이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며 일어서게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쎄면 주위를 다 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적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그런 쎈 패기가 좋고 멋져 보인다.


두 번째 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우아한 분이다. 이 분은 무려 나와 띠 동갑이다. 셋 중 제일 나이가 많은데 말과 행동이 늘 차분하고 우아하시며 배려심도 많고 맡은 일을 멋지게 하시는 분이다. 사실 이 분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좋아하고 친하고 싶어 한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커트 머리에 긴 롱 블랙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우아하고 멋져 보였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면 직접 원두를 내려주시고, 항상 칭찬을 해주시곤 했는데 우아한 말투로 칭찬 샤워를 받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너무 우아하고 완벽한 느낌은 다가가기 어려운 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그 분과 연결고리도 별로 없었기에 멀리서만 존경의 눈빛만 혼자 보내는 처지였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게 있는지 다음 해 나는 그녀의 업무를 이어받아하는 상황이 왔고, 그녀 덕분에 엄청난 업무를 인수인계받으며 일을 어느 정도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 번 전화로 물어보고 귀찮게 했는데도 화나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알려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참 죄송하기도 하다. 사실 나는 지금 누가 일을 물어보면 나도 바쁜 처지라 친절하게 붙잡고 설명해 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참 일을 몰랐고 어리바리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 덕에 주변을 아우르며 전체를 보고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세 번째 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말을 정말 잘하는 분이다. 어떤 화제가 던져져도 논리력을 갖춘 언어로 주변을 압도하는데 듣다 보면 입이 딱 벌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도 위에 언급한 분들과 함께 "진짜 말 잘한다."를 내뱉곤 한다. 늘 나는 그녀와 대화 자리에서 여기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라며 이런 사람이 정책을 만들거나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목청을 높인다. 그녀의 시선은 개인에 매몰되어있지 않고 늘 주변, 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로 향해 있다. 나는 그녀가 이 직장에 있는 게 안타깝다. 내가 그녀에게 배운 것은 나의 감정과 상황을 말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닥쳤을 때 ‘나’ 화법을 잘 쓰지 않는다. 나의 감정과 생각은 꽁꽁 숨긴 채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다 보니 싸움도 나고 오해가 생기고 쉽게 해결할 일도 꼬여갈 때가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게다가 나는 좀 욱하는 스타일이라 화가 나거나 억울하면 목소리가 떨리고, 커지면서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도 못하고 만다. 하지만 이제는 종종 그녀를 통해 배운 표현을 몇 개 암기하고 써먹는다. 때로는 미리 준비한 언어가 나를 보호할 때도 있다.

위 세 사람은 서로 아주 친하고 나는 그 밑에서 늘 바라보며 추종하는 듯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만나면 늘 행복하고 재밌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들은 강자편이 아니고, 옳지 못한 일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앞장서서 이야기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에 기대어 따스한 온기를 나눌 줄 아는 분들이다.


얼마 전 우리 모임의 막내에게 가슴 아픈 일이 생겼다. 평생 같이 살지도 않았던 남남 혹은 웬수같은 아빠의 병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그 사정을 아는 즉시 모였고 같이 밥을 먹고 그녀를 한참 안아주었다. 그리고 같이 울고, 곁에 우리가 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린 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 사연을 다 나누며 공감하고 아파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위 세 사람이 있고, 나는 그들 곁에 서서 아직도 배우고 따라 하고 싶은 어린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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