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 : 나의 해방일지 (3)
움켜쥐고 있는 돈
엄마 말에 굴복당했다고 했잖아요. 근데요,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있어요. 엄마한테 그렇게 '돈'이 먼저가 아니다 '마음'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고 '정서적 지지'였다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그 훨씬 전부터 이미 돈에 굴복된 상태였던 거 같아요.
엄마에게 돈 때문에 서운했던 기억들이 많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에겐 많지는 않았지만 늘 돈이 있었어요. 그깟 샴푸며 후시딘이며 치과 치료비 같은 건 제 돈을 쓰면 되는 거였어요. 근데 제 돈은 쓰기 싫어서 꽉 움켜쥐고 엄마니까 엄마가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럴 수가... 약간 유레카 같은 느낌도 드네요. 근데 또 바로 엄마를 탓하는 마음이 올라와요. 왜 내가 돈을 움켜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자기변명이요. 그리고 엄마의 스트레스로 인한 화와 짜증은 나만 겪었다는 피해의식도요.
아빠의 사업이 결정적 문제였지만 아빠는 밥벌이를 쉰 적이 거의 없었어요. 동생은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성적도 좋았기 때문에 엄마의 지원을 받았죠. 막내는 너무 어렸었고요. 막내 역시 윤선생도 하고 플룻도 배웠어요.
근데 사실 모르겠어요. 다른 가족들에게 어떤 마음들이 남아 있을는지는. 엄마 말에 의하면 아빠는 걱정 없는 사람이라 스트레스 없었을 거라 하는데 정말 그랬을까요? 그랬을 거 같기도 하고 아닐 거 같기도 하고. 사실 아빠가 엄마 속 많이 썩였죠. 작은 사무실 하나 남았을 때도 거기서 친구분들과 고스톱 치고 밤새 고스톱 치느라 늦게 들어오신 적도 많고 다단계에 잠깐 발을 들이신 적도 있고.. 그러다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나서도 택시 운전하시며 밥벌이를 쉬신 적은 없었는데 고스톱으로 돈을 많이 날리셨으려나요?
동생 역시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도 친구들과 비교돼서 속상했대요.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는 다 해놔서 걱정 없었는데 자기는 그렇지도 않았고 그 대치동 학원도 남들은 엄마가 다 알아서 등록해 주는데 자기는 겨우 딱 하나 이것만은 꼭 등록해 달라고 해서 다닌 거라고. 그리고 공부를 잘해서 엄마의 지원을 받았다 했지만 그 결과가 처참했을 때 엄마의 실망 또한 더 심했으니까요.
막내도 항상 친구 가족네 껴서 놀러 다니곤 했거든요. 외동딸이었던 그 친구네 집에서 항상 우리 막내도 함께 놀러 가길 원했어요. 그 집은 외동딸인 자기 딸에게 이것저것 다 풍족하게 해줬으니 함께 놀러 다니며 좋은 거 같이 누렸어도 비교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엄마 역시 파출부 일이라도 해보려고 하셨대요. 하루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할 수가 없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누구보다도 엄마가 가장 힘드셨겠죠. 적은 돈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려고 했으니 스트레스가 엄청나셨을 거예요.
근데 저는 왜 저만의 상처에 갇혀 살게 됐을까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거였을까요? 제가 움켜쥐고 있던 돈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지금도 제 통장에는 돈이 있어요. 뭐 돈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니 누군가에 비하면 적은 돈일 수도, 또 많은 돈일 수도 있겠죠. 근데요 제가 쓸 수 있는 돈은 적어요. 돈은 있지만 쓸 수 없어요. 왜냐면 돈은 움켜쥐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조금이라도 대비할 수 있잖아요.
그런가 봐요. 제게 돈이라는 건 비상금의 의미가 큰 거 같아요. 없으면 너무 불안하고 걱정되는 거요. 그래서 있어도 쓸 수 없고요 더 큰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상금을 필요로 하는 거죠. 이래서 제가 부자가 못 돼요.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가져본 적 없는데 경제적 자유는 이루고 싶고, 돈에서 해방되고 싶으면서도 돈을 많이 갖고 있었으면 좋겠고. 삶에서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것임은 분명해요. 이걸 어떤 마음으로 다뤄야 할지가 제게 남은 과제겠죠? 내가 돈의 주인이 될지 아니면 돈에 끌려다니게 될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