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평행선. 서로의 목소리.
캐나다에서 생활한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중 8할은 육아와 집안일, 1할은 내 공부와 독서의 시간들, 나머지 1할은 남편과의 부부싸움이었다. 물론, 그 시간들 사이사이 여행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동네 산책을 하는 날도 있었다. 내가 남편의 의견을 따를 때는 그냥 그대로 살아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 남편의 의견대로 살아보니 결국 내 입장은 이해받지 못했고, 일방적인 희생이 지속된다고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내 생각도 맞을 수 있고, 나도 생각과 의견이 있다는 생각이 커졌다. 내가 점점 목소리를 냈다. 나는 내가 목소리를 내어 둘 사이에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부부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목소리를 내어 내 의견을 이야기하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목소리를 내면 낼 수록 남편과 나 사이의 생각의 평행선은 만나지 않고, 간격이 멀어지기만 했다. 조화와 균형은 나의 이상이었을 뿐, 둘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져만 갔다.
남편은 자기는 돈을 벌기에 가장의 역할을 다 한다고 말했다. 나는 돈을 안 벌기에 나의 모든 시간은 가사와 육아로만 채워져야 내가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입장에서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 나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을 지적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나에게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를 더 보라고 말했다. 평일 낮에 내가 누군가를 만나면, 집에 있으면서 아줌마들과 놀러 다니며 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자유로웠지만, 나는 점점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남편의 이야기들이 부담스러워서 깨끗한 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나는 이런 남편의 대우들이 억울했다. 사회생활을 하던 내가 아이와 남편을 위해 내 커리어를 희생하는데 고마움을커녕, 모든 육아와 집안일이 다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사고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집안일은 온 가족이 함께 해야하는 것 아닌가, 육아는 부모가 함께 협력해서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나와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실림 하는 가사 노동력은 행복한 가족의 일상을 위해 필요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열심히 가사 노동을 했다.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일을 아주 좋아했고 만족스럽고 행복하던 순간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내 노동과 희생은 직접적인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대상이기는커녕 무시되고 트집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반복될수록 가사 노동은 고역같이 느껴졌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이 그런 대우와 나의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억울했다.
그런 일상의 반복되는 의견과 관점의 대립들이 나를 압박했다. 결혼 전에는 내가 사회생활을 못할 줄 몰랐다. 남편은 함께 일하며 맞벌이하는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에 내가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의 사회생활이 이렇게 장기간 단절 될 줄은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다. 첫째를 낳고 내가 복직했지만, 남편은 자신의 퇴근 이후의 여가 생활을 일주일에 세네 번 이상을 유지했다. 나는 남편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횟수를 줄이기를 요구했지만, 자기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양보할 생각이 없단다. 힘들면, 나보고 휴직을 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라고 말했다.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는 휴직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남편이 나에게 완벽한 부인과 엄마를 요구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프고 예민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육아도움에 대해서는 임신 초기부터 시어머니는 ‘섭섭해하지 말아라. 나는 신경 못쓰니, 친정어머님께 도움 받아라.’고 말했고, 친정엄마는 처녀 때부터도 ‘엄마는 너 아이를 키워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고 늘 말하는 사람이었다. 늘 우는 아이가 짠했고, 밤마다 깨서 두 시간씩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며 밤잠을 설쳤다. 매일 퇴근하고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느라 너무 고단했다.
육아에 도움을 줄 생각이 없다고 표현하는 남편의 휴직 권유가 약간은 압박같이 느껴졌다. 나는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라고 몇번 권유했었다. 자신의 사회생활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했으면 하고 바랬다. 내가 느꼈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있을때 느껴지는 행복감과 동시에 사회 생활을 못하고 일을 못할때 느껴지는 무언가 막연히 느껴지는 허망함을 남편도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육아휴직은 강하게 거부하면서 나에게 세상물정을 모른다며 화를 냈다.
결국 내가 휴직 신청을 했다. 휴직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와 남편은 나에게 휴직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고, 그 말은 나보고 그것을 꼭 하라는 강한 표현임을 나는 알았다. 내가 휴직을 하면 육아에 대한 그 어떤 도움을 안 줘도 되기에 남편의 몸과 엄마의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기 때문에 남편은 여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엄마는 휴직하고 둘째 아들을 낳으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와 남편이 바라는 대로 했다. 예민한 아이를 워킹맘으로 혼자 돌보느라 지쳐있었고, 나는 엄마 말과 남편 말대로 살던 사람이었으니까.
아이와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봤다. 아이는 병원 가는 횟수가 줄었고, 울음도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주 예민한 아이는 나이가 들어도 그 기질은 변하지는 않아서 여전히 힘든 아이였다. 그럼에도 그때 나는 지금보다 젊었고, 에너지가 많았고, 아이가 예뻤기에 즐겁고 행복했다. 큰 아이의 예민함으로 둘째는 시도조차 못했다. 하지만, 시어머님과 친정 엄마의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계속 압박했다. 나는 가정 내에서는 늘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고, 마음도 약했고 집안 분위기 상 어른들이 지속적으로 하는 말을 지키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강요 반, 결심 반으로 마흔의 나이로 둘째를 낳았다.
나는 가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엄마에게 가족의 화목을 위해 늘 나를 양보하고 희생하라고 배웠고, 늘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내 일도 나에게는 소중했다. 하지만, 내 일과 가족일이 대립되면 나는 한 번도 내 것을 제대로 주장해보지 못했다. 내가 자란 가정은 나이 어린 여자애는 자기주장을 하면 안 되는 집이었다. 그냥 나에게는 이런 상황이 늘 익숙했기에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대로 남편이 말하는 대로 양보하거나 했다.
결혼 기간의 긴 시간 동안 나는 남편의 해외 발령을 따라가서 아이를 키우고 열심히 살림을 했다. 평생 단 한 번도 내 미래의 모습으로 가정주부를 그려본 적이 없는 나에게 결혼 이후의 가정에서의 생활들이 겉으로 보기에 티는 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힘들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야 맘이 편하니까. 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 내 커리어의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남편의 입장은 늘 나의 생각과 달랐다. 남편은 내가 한 희생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자신과 결혼해서 호강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밥하고 청소하고 라이드하면서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는데 그 느낌은 아무리 말로 표현해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해외 발령으로 인한 휴직임에도, 나에게 ‘돈을 안 벌고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돈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있으면, ‘나가서 돈을 벌어와.’라는 말을 자주 하며 화를 냈다. 그런 남편의 표현과 대우들로 내가 가족을 위해 내어 준 시간과 나의 가사 노동들이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되돌아보면 대학생 이후, 나는 나에게 생기는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들을 주로 독서를 통해 풀어나갔다. 혹은 나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끼면, 책을 통해 부족함을 메꾸었다. 때로 몇 년 만에 한번씩 맞이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를 늘 일으켜 세웠던 것도 책이었다. 마음이 힘든 일이 있어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을 때 즈음 한참 누워서 힘을 비축해낸 후에 내가 처음으로 하는 일은 책에 파고드는 것이다. 힘들수록 더 나는 책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글을 쓴다.
책을 읽으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다 정리되는 것 같아서 책 읽는 시간이 좋았다. 어찌 보면 이런 종류의 책 읽기는 현실 도피 같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내가 바닥에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데 독서는 내 뒷심이 되었고, 내가 세상을 배우고 나 자신을 조금씩 바꾸어나가는데 독서가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때까지 책을 읽고, 마음을 열심히 들여다본 후에 계속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글로 써서 계속 해서 생각을 정리해나가면 어느 순간 힘듬과 복잡함에서 벗어나고 있는 나를 느낀다.
나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데, 내 생각이 정리가 안되고 바로 사람을 만날 수 없을때가 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무언가 알고 싶을 때도 책을 읽곤 했다. 친한 친구들은 다들 바빴기에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눌 여자 자매도 없다. 부모님은 내가 원할 때 대화를 나누며, 나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시던 다정다감하거나 가까이하기 쉬운 분들이 아니었다. 친오빠는 나에게 늘 아는 것도 없이 무식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보다는 책을 통해서 인생을 배웠고, 오빠말처럼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더 놓지 못했다.
고민이 생기면 책을 읽었고, 기분이 좋아도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내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알아나갔다.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짐을 줄이며 정리하는 방법들을 배우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고, 음식 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집을 고르는 방법과 저축하고, 경제적으로 사고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 내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책은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이자 친구였다. 이것은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갖는 일상의 고민들은 독서를 통해서 해소되는 경우가 많았고 책을 읽을수록 내가 더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책을 계속 읽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술을 마시며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낸다고 말하였다. 술 마시고 들어와서 내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했던 어느 날은 내가 읽던 책을 나에게 집어던진 적도 있다.
나는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가치를 창출해 내며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다. 나의 독서와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가치 없다고 말하는 남편의 대우가 슬펐고 화가 났다. 이런 남편과의 평행선을 달리는 의견대립과 입장차이는 캐나다에서 5년 내내 좁혀지기는 커녕 더 멀어져 벌어져만 갔다. 결혼 생활 중 가장 긴 시간을 있었던 캐나다에서 남편과 나의 사이는 가장 크게 멀어져갔다. 남편과 내가 서로 목소리를 낼수록,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이런 되풀이되는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나의 슬픔의 크기는 커져갔다. 내 슬픔이 커져가는 만큼 우리 관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비관적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