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내가 만난 사람 (4)

짧지만 강한 만남

by 일주일의 순이



신영복 선생님은 우리 사회를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하며 오늘날의 만남을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처럼 한 점에서, 순간에서 끝나는 만남, 또는 부딪침이라 빗대셨다. 나 역시 서울에 스무 살이 되어 올라와 하루에도 수없이 부딪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찾지도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점점 이 삶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아마 모든 만남을 기억하고 살기엔 팍팍한 서울살이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의미를 찾지 않으려고 하면서….

그러던 차, 작년 11월 나는 아주 인상적인 사람 두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 시 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기억 속에 잔상이 또렷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두 분이 곧 정년퇴임을 앞둔 교사라는 것만 알 뿐 성함도 모르고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아직도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은 수업 나눔과 관련된 연말 교육청 워크숍에 참석한 날이었다. 3개의 교육청이 모인 제법 큰 모임이었는데 각 분임별로 자리에 앉게 되었고, 내가 앉았던 독서분임 자리에서 두 분을 처음 뵙게 되었다.

첫인상은 두 분 다 여느 선생님과 같이 평범한 듯 보였다. 그런데 우리 분임의 공통 주제인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자 두 분의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을 느꼈다. 남자 선생님 한 분은 매년 100권의 책을 읽으시다 눈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올해부터 적게 읽으려고 하신다고 하셨다. 말투와 표정에서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가 풍겼다. 뭔가 반짝이면서도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교직생활을 간단히 돌아보며 말씀하시는데 보람되고 만족한 삶을 보내셨구나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분은 여자 선생님인데 허리가 많이 안 좋으셔서 병가를 썼다가 복직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몸은 힘들어 보이신대도 학교와 아이들 그리고 책 이야기가 나오자 열정적으로 돌변하셨다. 매해 아이들과 독서캠프하며 학급 운영하신 이야기부터 학부모들을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하였던 경험까지 순식간에 쏟아내신 그 에너지에 압도되어 나는 넋 나간 듯 듣게 되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워 하루를 돌아보다 그 두 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하지만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걸어가시는 나이인데 어디서 그리 활기차시고 밝은 에너지가 나오게 되었을까? 연륜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더 특별한 힘이 느껴졌다.

더불어 나는 과연 60이 넘는 나이에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며 즐겁게 교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요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은 시대이다. 뭐 어느 일 하나 쉬운 일이 있겠냐만 교직도 그동안 많이 바뀌며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느낌이다. 교육은 어느새 서비스직처럼 변하게 되었고, 그 시대에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서 교사의 철학과 신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점점 더 몸을 사려가며 수업을 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제대로 수업 준비를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점점 회의와 자괴감을 반복하며 어느덧 50이 넘으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품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으로 20년을 맞이하였다. 내가 55살이 되면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60인 선생님을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까? 그러면 나의 노후는 무얼 하며 보내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과 걱정을 하느라 정작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위해 치열하게 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두 분을 만나고 나니 아직 나는 한참 더 가야 할 길이 있음을 깨달았다. 무언가 시작도 해 보지도 않고 매듭만 성급하게 지으려고 한건 아닌지, 그냥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지내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분들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책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통해 삶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매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책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그저 시간을 평범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이고 에너지를 쏟아 마지막까지 진하게 교직생활을 밀도 있게 보내고 싶다.

배우고 아는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책을 통해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우연히 그렇게 실천해 오신 특별한 두 분을 만났다. 어찌 보면 짧은 부딪침이었지만 나의 삶에 균열이 생겼음을 느낀다. 또 덕분에 앞으로 나의 교직생활에 희망의 무늬가 새겨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아이들과 온 힘을 다해 수업을 해보지 못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언젠가 나도 먼 훗날, 내 후배 교사들에게 열정적인 모습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날을 그려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전반부가 끝난 지금, 남은 후반부의 멋진 교직 생활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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