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으로 일과 육아, 가사라는 세 가지 공을 한꺼번에 굴리다 보니 직접 장을 보러 가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평소의 패턴이었다. 평소 잠시 쉴 때 인터넷으로 생필품이나 먹거리, 옷을 샀다. 그리고 요즘 배달음식이나 밀키트도 발달하고, 반찬가게도 발달하여 그런 것들을 이용하여 식사를 준비해다. 각종 배송으로 주문하면 몇 시간 만에, 또는 다음날 새벽에 식재료를 현관문 앞까지 배송해 주었다. 택배 배송도 대부분 이틀이면 집까지 배달이 된다.
미국은 거주지와 상업 지역이 분리되어 있어서 상점은 주차장이 매우 넓게 잘 되어있는 상점 밀집 지역인 커먼스로 간다. 집 앞에 슈퍼에 걸어서 가던 한국과 달리, 가까운 슈퍼도 차를 타고 상점 밀집 지역인 커먼스에 가야 한다. 도심 지역이 아니라 쇼핑몰은 10-20km 거리를 가는 것은 기본이다. 시간과 발품이 많이 든다.
아이들 학원도 학원 셔틀버스가 와서 픽업해 주거나 단지 내 상가는 걸어서 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무엇을 하려면 10km 거리쯤은 예사로 라이딩이 기본이다. 문득문득 동선이 짧아서 발품을 줄일 수 있는 복작복작한 한국이, 도시가 그립다.
무엇보다 반찬가게나 배달음식이 너무 그립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인데... 한국마트가 차로 30분 거리이니 그렇게 가깝지 않고 식재료도 구하기 어렵고,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밀키트나 한식 자체가 그리운 것이구나! 콩나물 국밥, 설렁탕, 갈비탕 등 이런 뜨끈뜨끈한 음식들이 너무나도 먹고 싶다!!
한국에서는 스파게티 등 다른 나라 음식을 좋아하고 이국적인 입맛이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 나와보니 나는 뼛속 깊이 완전 한식 파였다.
# 예상치 못한 내 몸의 반응
우리가 사는 곳은 복잡한 도심이 아니라 출퇴근 시간에 약간의 교통 체증 외에는 비교적 도로가 한적한 편이다. 그래서 남편은 미국은 땅이 넓고 도로도 넓고 한국의 도시처럼 차가 많고 복잡하지 않아서 운전하기가 더 낫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15km 거리의 복잡한 도심을 통과하는 출퇴근길 운전이 아침 출근시간에는 1시간~1시간 반까지 걸렸지만, 여기서는 15km는 10-15분이면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처음 한 달 동안 운전할 엄두를 전혀 내지 못했다. 내가 사는 도시의 한가로운 길이 오히려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길이 낯설어서가 아니다. 나는 공간지각능력이 좋은 편이라 낯선 길에서도 늘 지도를 들고 앞장서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었고, 처음 오는 길도 한번 온 길은 그대로 잘 인지하여 다시 어려움 없이 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운전하기 더 쉽다고 하는 길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겁이 나는 거지?
내가 사는 작은 도시는 10m 이상 아마도 20m쯤 되어 보이는 키가 매우 큰 나무들이 도로에, 가로수로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나 집들이 그 나무 건너에 있다. 게다가 여기는 상점들과 집들이 대부분 1-3층에 해당하는 낮은 건물이라 고층 건물이 없어서 도로에 있는 커다란 나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키 큰 나무가 벽을 이루고 있는 이 도시를 ‘Hidden city’라고 불렀다.
차로 운전할 때 보이는 풍경은 절반은 하늘이고 절반은 나무이다. 운전할 때 하늘과 나무만 보이고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풍경은 나의 공간지각능력에 혼란을 주었고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으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굉장히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인데.. 이러한 똑같은 풍경을 운전할 때 나에게 약간의 공포증이나 불안감과 같은 비슷한 느낌이 들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당황스러웠다.
누군가 밀폐된 공간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폐소공포증 등 여러 가지 공포증을 말로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나는 한적한 똑같은 풍경의 길에서 불안감을 느끼다니.. 어떤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고 전혀 불안 요소가 아닌 것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심리적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였다.
달리는 차에서 바라본 도로의 풍경(1)
달리는 차에서 바라본 도로의 풍경(2)
달리는 차에서 바라본 도로의 풍경(3)
그런데 신기하게 보스턴이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나 좀 더 도시화된 곳으로 여행을 가면 오히려 그곳에서는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동안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매우 복잡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살이에 적응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여행으로는 드넓고 탁 트인 자연이나 여유로운 곳이 너무나도 좋지만, 매일의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공간을 미국 시골로 이동하여 땅도 넓고 한적한 시골살이에 적응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의외의 곳에서 내 몸이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는 걸 몇 달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익숙한 환경에서 낯선 환경으로 변화하면 우리 몸은 나름의 방식으로 서서히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는구나!
# 적응중
어느 날 아이와 같은 반의 친구 엄마가 이끄는 대로 동네 trail을 산책했다. 그 엄마가 나무에 있는 새의 이름을 알려주고 trail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그 주변 풍경들이 갑자기 내 마음속에 쏙 들어와 안기는 느낌이 들면서 그전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모습들이 너무나도 예쁜 모습으로 보였다. 이제 매일 일상적인 삶으로서의 공간으로써 이곳에 시골살이에 적응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