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 : 나의 해방일지 (4)

삶의 동력과 방패막이

by 일주일의 순이


#삶의 동력

돈이 제게 미친 영향이라.. 많죠. 많겠죠? 결핍이었으니까요. 결핍을 메꾸기 위해 노력했을 거예요. 저를 성장시킨 동력이기도 해요.

근데, 뭘 성장시켰을까요?
.........

제가 자부하는 거요?

경제적 관념 갖고 있는 거요. 경제적 관념을... 과소비하지 않는 거로 설명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저, 돈 잘 아끼거든요. 결혼하고 좀 바뀌긴 했는데요, 그전엔 더 알뜰했어요. 충동구매도 하지 않았고 사고 싶은 게 많아도 다 사지 않았어요. 정말 필요하거나 진짜 나에게 만족감을 줄 만한 것들로 고르고 골라 샀어요. 가격 비교와 쿠폰 신공, 손품 팔기, 발품 팔기가 전공이었죠.

저축도 잘했어요. 저는 제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좋았어요. 처음 만든 통장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 아마 집 어딘가 찾아보면 버리지 않고 모셔뒀을 거예요. 중소기업은행에서 만든 주황색 통장이었고요, 초등학생 때 돈이 생기면 모으고 모아 천 원, 이천 원을 저금하러 은행 가던 길, 그 발걸음이 아직도 생생해요.

또 생각났는데요.. 학원비를 지불하고 나면 절대 결석하지 않았어요. 학원비가 아까워서요. 심지어 웬만하면 학원 다니지 않고, 문제집도 사지 않고 혼자 독학하기도 했어요. 임고 준비할 때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가산점이 있다 해서 준비는 해야겠는 데 학원비가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정보들 찾아 혼자 공부해서 자격증 땄다니까요. 처음 운전면허 시험 준비할 때도 문제집 그거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돈 들이기 아까워 인터넷으로 공부했어요. 모든 게 이런 식이에요. 최대한 투자 비용을 아끼고 제가 그만큼 더 노력하고 고생했죠.

그러고 보니 알바도 참 열심히 했네요. 방학 때마다 알바를 했어요. 커피숍도, 백화점도, 결혼식장 예식 도우미에 종이접기 아르바이트까지... 아르바이트 얘기도 참 추억이 많은데. 그건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말해보고 싶네요. 근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알바를 열심히 했을까요? 당장은 용돈으로도 써야 했지만 무엇보다 나중을 위해 결혼 자금이라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갖고 있었죠.

과소비도 안 하고, 절약도 잘하고, 저축의 중요성도 알고, 최소 투자 최대 효과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생활력 있는 점을 제가 자부하는 경제적 관념으로 해석해도 되는 거 맞을까요?

근데 말하고 나니 별거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돈 때문이라면 학창 시절 공부나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 싶기도 하고요.

음... 그래도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면 그건 돈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 자체가 정말 재밌고 좋아서 열심히 했다기보다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원칙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거니까요. 그러니까 제 삶의 동력이었다고 봐도 될까요?


#방패막이

돈은 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곤 했어요. 그 당시에는 몰랐을 거예요. 내 선택에 돈이 미친 영향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해방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했을 때요 남편과의 결혼도 떠올렸는데요, 결국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된 것도 돈 때문이었을까 싶은 거예요. 좀 웃겼어요. 남편이 부자였냐고요? 그럴 리가요. 저는 자존감은 부족하고 자존심은 셌거든요? 제가 모은 돈으로 시집을 가야 하는 형편에 남편 될 사람 집이 잘살아서 예단이며 결혼식 비용이며 이런 것들을 신경 써야 할 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걸 자존감 부족과 자존심으로 설명하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보다 형편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내가 뭔가 눈치를 봐야 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은 저를 불편하게 했어요. 참 이상하죠?

그래서 저희 엄마가 속상해하셨어요. 사위 될 사람은 우리보다 형편이 좀 나아서 딸들이 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엄마 마음이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말씀하셨는데 본인은 달러 빚을 지어서라도 남들 하는 것처럼 시집보내고 싶으셨대요.

근데 왜 남편하고 결혼하게 됐냐고요? 남편의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 편했던 것도 있었고요 어렵게 자라서 돈 아낄 줄도 아는 사람이었고...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도 한몫했지요. 안 그래도 어제 퇴근길을 같이 한 선생님이 그래도 그 성당 오빠(남편) 네 집이 잘 산 거 아니었냐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발끈하며 '성당 오빠한테는 직장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했다니까요.

'공'자 붙인 게 뭔 대수라고, 저도 공무원이니 같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어쩌면 이 결혼을 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좀 웃기죠. 저도 좀 웃겨요. 낭만도 없어 보이고요. 그 당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던 게 돼버리는 거 같기도 하고. 어찌 됐든 나는 절대로 아빠처럼 사업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다짐했던 게 영향을 준 건 확실한 거 같아요.

그래도 결혼 이야기는 저도 뜬금없다 싶은 돈의 영향력에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이야기예요. 진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발목을 잡았던 돈 이야기겠죠. 근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저는 돈을 방패막이로 썼어요. 돈 뒤에 숨는 일은 쉽고 편했거든요.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내가 하고 싶다고 느꼈던 것들까지 모두 돈 핑계를 댔어요.

처음으로 제가 계속해 보고 싶다고 느낀 건 미술이었어요. 짧았지만 6학년 때 미술 학원을 다녔던 게 재밌었고 중학교 1학년 때 만화책에 빠져 만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막연히 미술은 돈벌이가 안 되는 것, 배울 때 돈이 많이 드는 것, 취미 활동으로 돈을 쓸 수 없다며 스스로 문을 닫아버렸죠. 근데요 지금 생각하니 핑계였어요. 용기가 없었던 거죠. 뭔가를 나의 선택으로 도전하는 일에 책임지는 게 두려웠던 거예요. 그냥 한 번 해보기에는 비용이 드니까 그 비용 탓을 한 거예요.

돈 뒤에 숨어있는 일은 참 편하다니까요. 제가 우리 가족들에게 혼자 서운해하는 게 하나 있는데요 바로 유럽여행이에요. 저도 대학생 때 유럽여행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경비가 많이 들잖아요. 제 통장에 있는 돈 긁어 가면 갈 수 있었는데도 그 돈은 못 쓰겠는 거예요. 물론 충분하지도 않았지만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통장에 있는 돈은 비상금이었고 제 미래를 위한 돈이었거든요. 잔액을 '0'원으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부모님께 보태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죠. 저는 제가 직접 돈을 벌기 전까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집안 형편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근데 제 동생은 다녀왔어요. 왜 제 동생은 장학금 받는 스케일조차 저와 달랐던 걸까요. 저도 장학금 받았다고요! 근데 동생은 전액 장학금을 받았어요. 저의 소액 장학금과 비교할 수 없었죠. 그래서 엄마가 동생의 유럽여행 경비를 대주셨어요. 나는 말도 해보지 못하고 접었던 유럽여행을 동생은 아빠 엄마 돈으로 다녀왔죠.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아빠 환갑 때 동생의 강력한 권유로 두 분 유럽여행 경비를 댔고요 또 시간이 흘러 막내가 유럽여행 갈 때도 용돈으로 보태줬죠. 결국 우리 식구 중 저만 유럽에 못 갔다 온 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혼자 좁은 마음으로 꿍하게 서운해하고 있었던 건데요. 이번 해방일지를 생각해 보며 다시 깨달았어요. 저도 갈 수 있었는데 비겁하게 돈 핑계를 대고 돈을 원망하며 혹은 동생에게만 여행 경비를 대준 부모님을 원망하며 혼자 서운함을 간직하고 있었던 거죠. 참 못났죠. 저의 못난 부분이에요. 나는 정작 움직이지 않으면서 주변이 나를 위해 돌아가 주길 바라는 유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요.

정말 돈 때문이었다면 돈이 생기고 왜 도전하지 않았는가. 상황이 달라졌다는 핑계를 대긴 하지만 그때의 열정이 부족했던 거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내 열정이 부족한 것을, 내 용기가 부족한 것을 돈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며 살아왔죠. 그러면서 지금도 종종 돈 뒤에 숨어 있어요.

돈은 저의 방패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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