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이 : 어른들을 위한 동화 (5)

[Five pack] Visiting Husband

by 일주일의 순이

[Five pack] Visiting Husband


순재개미는 늘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다녔다. 여왕개미는 순재개미의 잘 정리된 머리부터 발 끝까지를 쭉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러 오려고 입는 저 와이셔츠, 깨끗한 양말, 잘 접혀진 손수건. 다 와이프개미가 일 잘하고 오라고 챙겨 준 거겠지? 고맙네. 항상 깔끔하게 나한테 보내줘서.’

가정이 있는 수개미와 사귀는 것은 편리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 집 와이프개미가 잘 관리해서 보내주면 여왕개미는 데리고 놀기만 하면 되는 느낌. 놀다가 싫증나서 집으로 보내면 연락을 잘 못하니, 여왕개미가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도 전혀 귀찮지 않은 마음. 와이프개미는 이 사실을 모르니 마음 아프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수개미들이 집에 가면 미안해서라도 더 잘하려고 노력할 테니 서로 윈윈하는 것 아닐까?


“오빠, 오늘도 집에 들어가야 돼?”

“여왕님아, 그거는 터치 안하기로 약속했잖아.”

“아니, 집에만 들어가면 너무 연락을 안하는거 아냐? 나도 주말이면 다른 개미들처럼 남자친구랑 놀러 나가고 싶고, 전화도 하고 싶어. 와이프한테는 잠깐 쓰레기 버리러 간다고, 편의점 간다고 나와서는 연락해 줄 수 도 있는건데.”

“그런거 바라지 마. 서로 그렇게 되면 힘들어 져. 미안해. 다음 주에 다시 올게.”

순재개미는 그렇게 여왕개미의 집에서 나왔다. 습관처럼 핸드폰에서 여왕개미와의 문자 내역을 삭제하고 통화 목록을 깨끗이 정리했다. 넥타이 매무새를 다듬고 자기 굴로 기어들어가며 양 팔을 넓게 뻗쳤다.

“꼬맹아, 아빠왔다!”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요!”

꼬맹개미가 달려가 순재개미를 끌어 안았다. 순재개미는 소문난 애처가이자 자상한 아빠였다.

“응, 아빠 오늘은 일이 많았어. 대신 내일은 아빠랑 엄마랑 놀이동산에 놀러 가자.”

순재개미굴은 하하호호 웃음이 넘쳐났다. 가족을 위해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아빠, 그런 능력있는 아빠를 존경하고 기다리는 아이, 결혼한지 10년이 가까워도 신혼처럼 가끔 남편과 둘이서만 손잡고 데이트하는 사이좋은 부부.


그 시각 여왕개미는 핸드폰 속에 수도 없이 많은 수개미들의 번호를 뒤적거렸다. 흠, 이 개미가 아직 일하는 중이네? 여왕개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고르기만 하면 어떤 수개미던 다 마음을 뺏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지갑 속에 들어있는 여러 장의 카드처럼 골라 쓸 수도 있었다. 여왕개미는 당연스럽게 나 정도의 암캐미를 만나려면 바쳐야 하는 노력과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구범오빠, 나 오늘 기분이 별로야. 우리 드라이브 갈까?”

“아니, 우리 여왕님이 왜 기분이 안좋으실까. 오빠랑 그럼 드라이브하고 백화점을 가야지.”

“어머, 정말? 역시 오빠는 나를 너무 잘 알아. 그럼 어젯밤에 전화 안 받은거 내가 용서해 줘야겠네?”

“어, 그래. 그런데 잠깐 잠깐만. 전화 한 통화만 받고 올게.”

돈 많은 수개미는 돈으로 암캐미의 마음을 사는 것이고, 돈이 없는 수개미가 시간과 정성으로 암캐미의 마음을 얻는 법이다.

“아, 여왕개미야,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내가 회사에 일이 생겼네? 내가 저번에 준 카드 있지? 그걸로 가서 너 사고 싶은 거 사. 오빠가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너네 굴 앞에 잡스백화점으로 가. 알겠지?”

구범개미는 개미사회에서도 유명한 기업의 젊은 대표였다. 오래 만난 암캐미와 결혼한다고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구범개미가 여왕개미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절대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여왕개미와는 그저 노는 것이고 즐기는 것일 뿐 함께 알과 애벌레를 키우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


“여왕개미는 좋겠다. 저렇게 예쁘고, 인기도 많고, 늘 화려한 삶을 살잖아.”

여왕개미는 지난 혼인비행때 너무 많은 수개미가 몰려 그 열기에 데일 뻔했을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개미로 유명했다. 그런 여왕개미의 모습은 굴에서 알 키우기와 애벌레를 돌보느라 억척스러워진 다른 암캐미들을 주눅들게 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는 ‘워너비’라는 이름의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저런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아, 그런데 오늘은 진짜 아무도 시간이 되는 수개미가 없네.”

하지만 정작 여왕개미는 사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지 오래 되었다. 신상 가방을 메고, 좋은 개미굴에 묶고, 늘 비싼 먹이를 먹어도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지가 않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생식능력을 가진 몸 하나였다. 그런 여왕개미의 아름다움은 수개미들이 본능처럼 다가와서 즐기다가 가는 페로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수개미들의 시간은 이번 여왕개미의 생식능력이 떨어지면 나타날 또 다른 여왕개미와 함께 할 것이고, 그들의 잘 나갈 미래는 가족개미들과 계속 누릴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지금 내 것이라 해도 그것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만나거나 영원히 내 것이 될 수도 없었다. 연인이라고 옆에 있어도 남들 많이 가는 유명한 맛집 한 번 함께 못 가보고 늘 어두컴컴한 개미굴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만나야 하는 존재.


“여왕누나, 나 왔어.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하고 계속 같이 있느라 연락 한 번 못해서 미안해.”

“윤기야, 너 나 자꾸 이렇게 외롭게 할 거야? 연인들이 다 같이 있는 그런 날 나는 맨날 혼자야. 나는 휴일이 제일 싫어!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는 나랑 있자”

“아, 누나. 그런데 알잖아. 발렌타인 데이에 내가 일하러 나간다면 와이프가 믿을 것 같아? 피곤하게 이러지 좀 마. 질린다, 진짜.”

“뭐? 너 지금 내가 질린다고 했어?”

“하… 저번 혼인비행때는 누나 정말 예뻤는데. 그런데 요새 옆 개미굴에 새로운 여왕개미가 태어나려고 준비 중이래. 누나도 이제는 예전같이 잘나가지 않아. 수캐미들 전부 이번 혼인비행에 다 참가 할 거라던데?”

“뭐? 누구야, 누가 벌써 여왕개미 알을 다시 키웠대!”

여왕개미는 몸이 닳았다. 새로운 여왕개미의 탄생은 곧 자신의 매력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젊고 아름다울 때 건실한 수개미를 만나 가정을 만들었어야 했을까.

“윤기야, 너 나 사랑한다며. 너는 아직 애벌레도 없는데 그냥 부인버리고 나한테 오면 안될까?”

“누나, 왜 이래. 누나는 그냥 예뻐. 그래, 내가 참 좋아해. 그렇지만 부인은 좀 다른거지. 누나 알 키울 수 있겠어? 나 한 개미만 보고 애벌레 키우면서, 돈 아껴 써 가면서 그렇게 살 수 있겠어? 아우, 나는 누나 감당 안 돼. 누나 솔직히 나 말고도 수캐미들 많잖아. 그 중에 하나 얼른 골라 잡아. 누나를 위한 나의 충고다?”

그렇게 윤기개미는 여왕개미굴을 나갔다. 솔직히 윤기개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좁은 개미굴에서 알을 키우며 그저 그런 아줌마개미로 사는 삶은 유일한 무기인 아름다움을 잃는 길이었다. 부인을 속이고 여왕개미를 몰래 만나는 수개미들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남편개미를 믿고 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계속 상상으로 의심이 되어 본인의 마음을 괴롭히고, 늦게 들어오면 화가 날 것이다. 그게 남의 남편을 만난 여왕개미가 평생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받게 될 벌일 수도 있다.


여왕개미는 자신이 다른 암개미들보다 항상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너네들이 그렇게 위하고 아끼는 남편이 나 한 번 만나기 위해 충성과 찬양을 하는 모습을 좀 봐. 늙고 퍼진 아줌마들 선물보다 더 좋은 것을 나에게 사다가 바치고, 좋은 곳은 으쓱거리며 예쁜 나와 함께 간다. 아이고, 불쌍해. 저런 남편을 믿고 살다니. 나랑 놀다가 가도 일하고 오는 줄 알고 보약을 챙겨주겠지.’

하지만 현실에서 여왕개미는 수캐미들이 공동소유권을 가진 비싸고 예쁜 장난감일 뿐이었다. 다른 장난감이 생기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수개미는 여왕님을 위해 마음을 갖다 바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마론 인형에 옷을 입혔다 벗기고, 신을 신겼다 벗기는 놀이를 한 것 뿐이었다.

생식능력을 잃은 여왕개미는 대체를 당하고 버려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였다. 개미사회는 여왕개미가 다스리는 곳이 아니라 킹메이커인 일개미가 여왕개미의 알을 선택하고, 여왕개미로 만들고, 여왕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철저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법이었다.


내로남불. 너에게 도로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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