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 : 나의 해방일지(5)

결핍의 굴레

by 일주일의 순이


돈은 제 마음에도 영향을 줬죠. 이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요 사람들과의 마음을 나누는 데 있어서도 저는 계산적인 거 같아요. 뭐 그렇다고 영악하다거나 여우 스타일은 아니에요.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영악한 사람은 될 수 없었죠.

저는 베푸는 데 인색해요. 먼저 챙기고 베푸는 거 잘 못해요. 답례하는 것도 철저하게 사회화된 게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어요. 베풀고 답하는 것에 나의 진심 지분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어요.

남에게 마음을 전할 때도 주저하게 돼요. 소심한 마음에 혹시 나의 성의가 상대에게 부담이 될지도 걱정,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도 걱정, 나의 성의가 안 하느니 만 못한 것이 될까 눈치만 보게 돼요.

실제로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28살이나 먹은 (나이만) 어른이었을 때인데 마음은 10살 초등학생이었나 봐요. 학교에 저를 친근하게 생각해 주시는 선배 선생님이 계셨어요. 멋쟁이셨는데 딸이 없다면서 제게 옷도 주고 하셨죠. 그 당시 예쁜 옷에 눈을 뜨고 있었던 터라 저한테 예쁜 옷 주시는 선생님이 참 감사하고 좋았죠. 그래서 제가 원석 팔찌를 하나 사면서 선생님 것도 하나 샀어요. 세련된 선생님에게 얼마 하지도 않는 이 원석 팔찌를 드려도 될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근데 그 와중에 원석 팔찌 중에서도 제일 예쁜 건 비싸서 못 사겠는 거예요. 내거는 저렴한 가격 대에서 골라서 그랬을까요? 많이 비싸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늘 어디선가 돈에 걸려버려요. 그래도 제거보다는 좋은 걸로 샀는데 막상 선생님께 드리는 제 손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오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딱 느낌이 왔어요. '잘못된 선물을 골랐구나.' 뭘 이런 걸 샀냐며 선생님은 사양하셨지만 내미는 제 손에 받아 두시긴 했어요. 근데 뒤돌아 나오는 저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정말 딱 10살 아이의 마음이었어요.

저는 왜 눈물이 핑 돌았을까요. 제일 비싼 걸 고르지 못했던 마음이 걸렸을까요, 선생님이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사실 상대에게는 내 선물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잖아요. 그냥 주는 마음만으로 충분히 즐거워도 됐는데 그렇지 못해 무안했던 기억으로 남아 버렸어요. 이 일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남에게 주는 일도 참 어렵다고 느끼게 됐죠.

답례도 어쩔 때는 굉장히 기계적으로 해요. 그야말로 받으면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는 게 공식처럼 제게 새겨졌나 봐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주말 아침 8시, 늦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러요. 보니까 같은 라인에 사는 낯이 익은 할머니예요. 할머니는 다짜고짜 문 열어보면 안대요. 그래도 비몽사몽 잠옷 차림에 문을 열 수는 없어 무슨 일이냐 재차 말씀드리니 그럼 그냥 놓고 가겠다며 문 앞에 감을 두고 가셨어요. 아마 밖에서 이웃에게 인사 잘 하는 남편을 살갑게 보셔서 주고 가신 것 같아요. 가게에서 산 것 같지는 않고 어디서 따오신 감 같은데 저는 그걸 받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먼저 드는 게 아니라 별로 좋은 걸 받지도 않았는데 답례는 어떻게 하지? 가 먼저였어요.

기계적으로 반응한 거죠. 근데 결국 답례는 안 했어요. 아마 할머니가 가게에서 사 온 감이었다면 답례했을 거예요. 나만 고민하고 있길래 남편 덕분에 받은 거니 남편 보고 알아서 하라고 뒀어요. 정 없죠. 이럴 땐 저도 참 별로예요. 차라리 그냥 순수하게 감사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는 남편이 저보다 더 나아 보여요.

주고받는 마음의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플러스, 마이너스를 생각하게 되는 일은 훨씬 더 미묘하고 섬세하면서도 다양하게 있어요. 티를 내거나 드러내 원망하지는 않지만 저도 모르게 재게 돼요. 저번에 내가 뭘 더 했으니 이번엔 그냥 있어도 되겠지, 내가 더 많이 했는데 돌아오는 게 별로 없으니 이제 그만해야겠다 이런 식으로요.

그러면서도 깊고 은밀한 제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요 저는 주는 거보다 받는 게 좋아요. 답례에 대한 부담감만 없으면요 산에서 따 온 감도 좋고 감사해요. 그냥 나도 보답해야 된다는 마음 없이 누군가에게 충분히 받아 보고 싶어요. 근데 이런 사람 주변에 있으면 정말 싫겠죠? 안 그래도 베푸는 거에 인색한 데 받는 것만 하고 싶다니.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받기만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건 또 별로예요. 참 못났죠.

어쩌면 나만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강한 걸 수도 있고요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고자 하는 두려운 마음도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런 마음들이 결국 돌고 돌아 제게 또 다른 결핍을 안겨주겠죠? 베푸는데 인색한 마음, 주저하는 마음은 언젠가는 어디서든 어떤 모습으로라도 드러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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