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이 : 서점 여행자 (6)

길을 걸으며

by 일주일의 순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힘드냐고 물어보는데 그들에게 종종 이야기했다. 누군가 정해놓은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는 것은 힘든 것이 아니라고 보이지 않는 화살표를 내가 스스로 내 발 앞에 놓으며 이 길 끝에 어떤 미래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걷는 지금이 어쩌면 더 힘든 것이 아니냐고.

신월동 작은 빌라 1층에 새벽감성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은 <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의 저자 김지선 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산티아고를 3번이나 걸으며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는 그녀. 나는 '산티아고 가는 길' 서점특강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길을 걷는다고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에요. 그 순간 의미를 찾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길을 걷고 나면 용기가 생깁니다. 어떤 길이든 걸을 용기요. "

그녀의 말처럼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발자국을 남겨서 씨앗하나 싹트지 않을까 싶었다.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몆 년 전 여름 딸과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다. 인터라켄에 도착한 뒤 융프라우 정상까지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형형색색 꽃들로 장식된 집과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차창밖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산정상에서 얼음조각과 여러 봉우리를 구경한 뒤 내려왔다. 빙하지대를 벗어나자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수많은 야생화 속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다음역에 내려 걷고 싶었다. 계속 타고 가자는 딸의 등을 떠밀며 간이역에서 내렸다.


조용한 역 안에는 우리 모녀만 있었다. 딸은 무섭다며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안내판을 찾았다. 역 근처 작은 계단에서 클라이샤덱역으로 가는 나무 화살표를 발견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저 멀리 호수 아래로 자그마한 점처럼 목적지가 보였다. 그제야 우리는 마음이 풀리며 주위의 풍경이 들어오 기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곳은 풀이 가득한 초원이고 뒤는 하얀 눈으로 둘러싸인 융프라우 정상이라 두계절사이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역 주변에는 작은 집과 건물이 있었다. 딸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살던 집 같다며 안을 살펴보았다 비어 있는 모습에 고개를 떨구며 다시 길을 걸었다.


딸은 차츰 힘차게 걸었다. 기차에서 내릴 때는 걷기 싫다고 짜증을 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한참을 걸어가던 딸이 길이 없는 곳으로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어보았다.

“이 길로 가면 편한데, 왜 길이 없는 곳으로 가려하니?”

“저 밑으로 가는 여러 길들이 있잖아. 누군가 처음 만든 사람이 있어서 길이 생겼을 거야. 나도 새 길을 만들고 싶어. 그럼 사람들이 따라오겠지.”

그리고는 길을 표시해야 한다며 작은 조약돌을 주웠다. 걸을 때마다 돌을 떨어 트리고 남는 돌로는 민지길이라는 글자도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사진기에 담았다.


서울에서는 아는 길로만 가고 낯선 곳에서는 표정이 굳어지던 아이였다. 그런 딸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걸으며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융프라우가 무슨 영향을 준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니 제주도에 올레길을 낸 사람이 떠올랐다. ‘제주 걷기 여행’을 읽어 보면 서명숙 씨는 산티아고 길을 걷던 중 ‘당신의 나라에 카미노 같은 당신의 길을 만들어라. 나는 내 나라에 만들 테니…. ’라는 영국 친구의 말을 듣고 제주 올레길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길을 걷는 것과 길을 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온몸으로 느꼈다는 그녀, 새로운 길을 내면서 많은 성취감과 치유를 받았다는 그녀가 딸의 모습과 겹쳐졌다. 딸은 남이 만든 길로 안전하게 가고 싶어 하는 순종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동경이 꿈틀거리고 있었나 보다. 부모라도 자식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 딸의 성향을 미리 단정하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융프라우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바꾸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딸은 자신이 표시한 길이 잘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여행 뒤 많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낯선 곳, 새로운 길에 대해 좀 더 여유로워 보였다. 딸이 어느 곳에서든 새로운 길을 만들며 씩씩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옆에서 노란색 화살표를 그리며 세상의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