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햇빛을 받아 빛나는 성곽이 있는 두브로비니크 올드타운. 크로아티아 여행은 후배가 보내준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오래전 크로아티아가 어디인지도 모를 때 후배는 동유럽을 여행 중이라며 편지와 사진을 보내왔다. 반들반들한 대리석 기둥, 철제 테라스가 있는 식당은 드라마 세트처럼 보였다. 사람들 표정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때부터 나에겐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낭만 열매 가득한 곳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크로아티아를 갔다. 여행 책자나 정보가 많지 않아서 비행기 티켓만 들고 떠났다. 수도 자그레브와 플리트비체 공원을 거쳐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구시가지 밖에 숙소를 정했다. 하늘까지 뻗은 듯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낡은 곳이었지만 창문에서 성안이 다 보였다.
다리를 건너 성으로 들어가자 식당과 카페가 있었다. 한낮은 40도 가까이 되어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밤이면 스트라둔 중앙 거리가 인파로 가득했다. 노란색 가로등이 켜지면 짧은 드레스 입은 여자와 셔츠로 멋을 낸 남자가 걸어 다녔다. 선상 요트에선 젊은 무리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상상 속 모습 그대로였다.
아침이 되어 성곽투어를 하기 위해 올드타운으로 갔다. 관광객들로 가득했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화려한 불빛이 꺼진 곳은 적만만 감돌았다. 성곽 위를 따라 걷다 보니 번화가와 달리 총알 자국이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성곽 외벽에도 포탄 흔적이 있었다.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화장이 벗겨진 민낯의 두브로브니크를 보기 시작했다.
숙소 사장님은 중년 여성이었다. 서툰 영어로 총탄 자국이 왜 생겼냐고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슬픈 손짓을 섞어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을 이야기했다. 세르비아와의 전쟁으로 많은 이가 죽었다고 했다. 아버지와 삼촌도 그때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최악의 인종청소가 있었던 전쟁에서 말이다. 두브로브니크는 더 이상 핑크빛이 아니었다.
노른자 책방 독서모임에서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다. 각자 자신이 읽은 내용 중 인상 깊은 곳을 이야기했다. 나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으면서 크로아티아 분리주의 전쟁이 떠올랐다. 올리브가 목격했던 도시의 삶이 두브로브니크와 겹쳐졌다. 차별이 가득한 지구에서 떠나지 않은 순례자는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현실의 불편을 눈감고 완벽한 존재들만 산다면 행복할까? 유전과 형질 변형으로 계급사회가 된 시초지 지구, 차별과 혐오로부터 완벽히 분리가 된 유토피아 마을. 이 두 곳 모두 답은 아니다. 이 소설은 소수자, 약자에 대한 시선 그리고 다름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두브로브니크를 다시 간다면 스르지산에 올라갈 것이다. 아드리아해의 주황빛 노을이 사라지면 올드타운의 밝은 빛만 남는다. 그 모습은 마치 까만 바다 위에 떠 있는 보석 같아서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느낌이다. 세계 곳곳에 있을 순례자에게 여수 밤바다를 들려주고 싶다. 노래 속에 그리움을 담아 부를 것이다. 나는 지금 아드리아해 밤바다. 데이지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잘 있느냐고,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걸어가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