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존 치트기
첫 번째 이야기
생존 치트키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듯한데
이렇다 할 제목을 못 찾아 그리 되었습니다
저는 한 살 차이로 셋을 낳아 1.2.3 이렇게 키우던 시절이 있었어요 참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내 삶의 다시없을 양분이 되어 조금이나마 나아진 제가 되었다 느낍니다
부족하나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그간 어떤 가치를 쫓아 그 시간들을 이겨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나누고 싶어 주제를 이리 뽑았습니다
생존 그 자체였던 육아기를 지나
아이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되었답니다
늘 일기는 그래도 썼었어요
글쓰기로 그나마 치유하고 스스로 위로받던 시절이었네요.
주말 부부를 하다 휴직에 들어서며
외딴곳에 연고도 없이 있으니 참 그 누구 하나 붙잡고 얘기할 이 없더라고요 매일 부모님 도움은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힘들 때 기대고 싶고 오늘은 이랬어요 하소연하고픈데 어찌나 외롭던 지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많이도 울었어요.
독립적으로 자라서 기대는 성격도 아니고 부모님께 내색도 않던 나인데 그때는 왜 이리도 사무치게 부모님이 보고 싶던지요. 전화하다가 울까 봐 전화도 잘 못 드렸어요.
기저귀를 세 아이가 동시에 차던 시절도 너무 길고 길었죠. 한 아이는 분유 한 아이는 이유식 한 아이는 유아식. 오밤중에 이유식 갈아 젓다가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 다시 분유 타고 아침 시작되고 또 먹여야 하고 치워야 하고. 셋이 같은 것도 아니고 엇비슷하게 다 14개월 정도 차이가 나니 더 고통스럽더랍니다.
아이들이 참 예뻐서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참 좋아서 교직을 택한 것인데 내 새끼를 많이 낳고 싶었어도 이리 연연년생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제 팔자를 제가 볶았지요 ;)
남편이라도 좀 도와주면,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날 알아주기라도 했으면 한결 나았을 텐데 완벽주의 성향에 극도로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기에 위로를 기대하기는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사람도 그때 당시 본인 하나 챙기기도 힘들었지 싶습니다. 다자녀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애들 왕왕대는 소리 동시에 우는 소리 동시다발적으로 쏟고 일 저지르는 거 사실 그 상황에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힘들어요.
남편이 다 지나서 그러더라고요.
너무 미안했다고. 모른척해서.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본인이 뭘 도와야 좋을지도 몰랐다고 너무 미안했다고 십 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입을 떼더라고요.
한 번은 세 아이가 1.2.3살 때 장염이 동시에 왔을 때는 입원조차도 안되고 돌아버리겠더라고요 차라리 열감기는 열만 잡음 되지만 장염은 앞으로 뒤로 게워내고 자다가도 빨래가 계속 나오고 먹거리도 다 바꾸고 소독도 더 자주 해야 하고 일주일도 넘게 한숨도 못 잤더랍니다 꼬박 새운다는 게 삼일부터 한계더라고요.
제 속도 울렁대서 같이 토하고요.
그 와중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도 너무 힘드니 그랬겠지만 장염의 원인이 뭔지 주방을 아예 다 소독하라고 말하는 이 사람 때문에 정말이지 마음이 또 지옥이었지요.
사사건건 얼마나 다 화만 내던지요.
그렇지만 애들은 다 크더라고요 한 달 두 달 힘들어도 어느새 일 년 이년 지나고요. 차차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이 기적이구나 싶었어요.
하나 이런 육아기의 가장 풀리지 않는 숙제는 아이들도 아닌 나의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정에서 그 무슨 일을 하려 해도 하다못해 재테크를 하나 할라 해도 이사를 가려해도 부부간의 대화가 있어야 하잖아요. 반드시 관계개선을 했어야 했어요.
그러한 남편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생존 치트키
첫 번째 나를 낮추고 먼저 사과하기입니다.
저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큰 바위가 남편이었기에 이걸 첫 번째로 잡았어요.
미치도록 밉던 사람이지만 관계개선의 키는 바로 대화법이었습니다. 고쳐주고 싶은 부분을 마치 내가 한 것 인 듯 먼저 사과합니다. 너무나 고쳐주고 싶은 것 만가지도 넘었어요.
도와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말만이라도 사람 마음 편하게 해 주지 이것 하나만 간절히 바라던 시절이었어요. 내 주장하며 싸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고요.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며 나에게 하는 말투가 참 고쳐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치만 이래라저래라 하면 큰 싸움이 되지요. 아이들 셋이서 각자 존재감 가열하게 뽐내고 있는데 싸우기까지 하면 제 심신만 너덜너덜해질 뿐이고요.
그런데 사람 안 변한다지만 오 년 지나고 칠 년 지나고 아이들 학교 들어갈 때쯤 되니 정말 많이 달라져가더라고요.
돌이켜보았어요. 이유가 무얼까.
가장 중요한 게 저의 마음가짐 그리고 대화법이었어요.
이겨서 무엇 하나 일단 나를 낮추자 항상 그리 임했습니다. 제 잘못을 먼저 얘기했어요. 이게 핵심입니다. 하지도 않은 잘못을 만들어 얘기하기도요. 참 바보 같죠. 그치만 이게 먹히더라고요. 계속 듣다 보면 스스로도 안 하겠지 싶어서요.
"에이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오늘 큰애한테 말을 이렇게 할걸 (사실 남편이 고쳤으면 하는 부분)
내가 왜 그랬나몰라
나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나오네
지나고 나니 너무 후회가 되네
큰일도 아니었는데 내가 왜 흥분했었나 몰라(사실 나는 흥분 안 했음 남편이 요새 흥분했었음)"
시간이 좀 지나서 내 잘못인양 얘기를 합니다. 듣다 보면 본인이 지적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잠자코 있고 점차 그 행동의 빈도를 줄여나갑니다. 본인 행동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천천히요.
말로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던 것들이 이 방식으로 조금씩 개선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어떤 부분은 미친 듯이 좋았기에 내 반려자로 택한 것이었으니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 맘먹고 이렇게 저렇게 시행착오를 겪다 그나마 얻은 대화팁입니다.
죽을 각오로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어요.
죽는 것보다야 해보는 데까지는 한 사람을 수용해 보는 것입니다. 미움도 그나마 정이 있을 때 있는 것이더라고요. 무감정이 되기 전에 꼭 시도해 보세요.
다 큰 성인 둘이 사는 것이 어쩜 이리도 어려운지. 사랑해서 평생 함께하자 약속해 놓고 괴롭히자 약속한 듯 왜 이리 하루하루 더 괴롭던지요.
이제와 사소한 것에도 고맙다 얘기해 주고 같이 걸을래 말 걸어주고 오늘도 힘들었지 물어봐주는 남편이 참 신기하고 고맙습니다. 안 믿겨서 가끔씩은 눈물도 나요.
누구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저는 참말로 감사 그 자체입니다.
삶에서 그 무엇을 꿈꾸시든 옆의 반려자가 힘들어 그 꿈을 주저하고 계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내 삶의 꿈 그 첫 스텝은 원만한 부부관계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정말로 자격미달인 배우자는 예외로 두고요) 일단 마음이 편해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미치도록 밉지만 정말이지 내가 낮아지고 먼저 사과하기를 반복하고 수년 넘게 기다리며 기다리니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한 번은 친정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 사람이 말하더라고요. 저에게 가장 고맙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늘 말하지 않고 보여주고 기다려준다고요. 먼저 보여주고 따라 할 때까지 기다려줘서 참 고맙다고.
십 년이나 되어 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의 시간들을 언급하자면 너무나 드러내기 아픈 것들이라 다 공유하기는 힘들고 사람 고쳐쓰기 힘들다지만 누구나 마음의 중심에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링컨의 말을 인용하자면
"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논쟁할 시간이 없다. 불쾌감에 빠지거나 자제심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쟁은 더욱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완전히 옳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많이 양보하고 전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어도 어느 정도 양보해라. 좁은 골목에서 개를 마주쳤을 때 개에 물리기보다 개에게 길을 양보하는 것이 낫다. 개를 죽였다 하더라도 개에 물린 상처는 남는다."
굳이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고 켜켜이 상처 주며 변화시키려 애쓰지 마세요. 찬 바람만 쌩쌩 부는 데 옷 벗을 턱이 없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말없이 옆에 있어주면 끝끝내는 여미고 있던 옷을 벗고 맙니다.
있는 나를 그대로 보여주고 나를 낮추며 상대가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조금의 변화가 보일 때 인정해 주고 감동받음을 기꺼이 충분히 드러내세요.
바깥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들 가장 가까운 이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내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순간에 내 노력이 내 성공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잘나지 못한 저도 해냈으니 여러분은 더 금세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 사람이 이제서는 오래도록 내 곁에 건강하게 잘 살아주면 좋겠어요.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가정의 평안과 화목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