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동리에는 책이 가득한 북스테이숙소가 있다. 책 닦는 남자! 거실이 서점 같은 그 숙소에는 숨어있기 좋은 방이 있고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책과 자유를 찾는 이에게 좋은 곳이다. 이 동네에는 비수기애호가라는 카페가 있다. 삼면이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어 어디 앉으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앉아 밖을 보니 오래된 작은 방파제가 있었다. 그곳에서 어린아이와 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난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동해 바다 작은 방파제가 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미역을 붙이고 말리는 작업장에 다녔고 아버지는 조선소에 일하러 나갔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작은 방에서 우는 동생을 달래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러다 답답하면 방파제나 근처 등대로 놀러 가곤 했다. 방파제에는 커다란 뼈가 입구에 서 있었다. 둥근 아치 모양으로 되어 있어 큰 동물의 뼈인가 했다. 동생과 바다에서 놀고 있으면 가끔 일찍 퇴근한 아버지가 데리러 오곤 했다.
" 아빠 저 뼈는 머야?"
" 고래란다. 바다에 살던 큰 고래였을 거야. 지금은 뼈만 남았지."
고래뼈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은 해가 지는 노을을 닮아있었다.울긋 불긋한 빛을 받아 어딘가 슬퍼 보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도시로 온 아버지는 용접일이 익숙지 않아 손에 상처가 늘어갔다. 조선소 일은 야근이 잦았고 이른 새벽에 출근할 때가 많았다. 피곤에 지쳐 있던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파도가 부딪치는 방파제 끝에서 수평선을 바라봤다. 젊은 아버지는 저너머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 나는 집을 떠나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번아웃이 온 시기가 있었다. 외지에 혼자 살면서 잘 먹지도 못하고 낯선 업무와 인간관계로 지쳐갔다.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었다.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동굴에 갇힌 듯 컴컴한 방에만 있던 나를 아버지는 바다로 이끌었다.
" 괜찮다.괜찮을 거다."
어느덧 주름이 패인 손으로 연신 나를 끌며 아버지는 그렇게 매일 걷게 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바닷가를 걷고 또 걸으며 마음속 무엇인가가 풀려갔다. 어느새 나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혼자 걸어갈 수 있었다.
야근에 지친 날에도 바다를 바라보며 방파제에 앉아있던 아버지의 뒷모습. 마음이 아픈 딸이 안쓰러워 매일매일 등을 쓰다듬어주던 거친 손. 그리고 아버지가 떠난 지 3년. 힘들 때마다 바다를 찾는 이유는 누군가가 그리워서일까. 아버지가 바다 너머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한동리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박제된 고래뼈가 아닌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