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쩌면 나의 슬픈 이야기
가진 것 없는 이가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짠한 이야기
매해 7월, 나는 제주에 와서 1년 치 행복을 저장하고 돌아간다.
1. 제주도에 갈 결심
2019년 4월,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에 갈 마음을 갑자기 먹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어떤 목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에어비앤비를 켜고 제주도 숙소를 검색했다. 혹시 몰라 에어비앤비에 나온 숙소에 직접 전화를 걸었고 할인된 금액을 입금하며 5박 6일의 일정을 예약했다. 마음먹은 지 2시간 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급작스러운 여행이라니. 그 여행은 벌써 5년의 시간을 달려오는 중이다.
2015년 전후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들과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 있었다.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올린 글과 사진은 나와는 먼 딴 나라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쉬고, 놀며 지내보았으면.....(물론 아이들과 간다는 게 완벽한 쉼은 아니다.)’ 제주도 한 달 살이는 육아와 살림으로 소진된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무엇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매일 바쁘다며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남편, 혼자서 아이 셋과 어디 갈 데도 없이 집, 마트만 왔다 갔다 하는 매일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이든 시간적이든 체력적이든 내가 혼자 쌍둥이와 첫째를 데리고 제주도에 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2018년 여름, 나는 3년 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아이들은 어렸지만 어린이집을 믿고 출근을 했다. 복직을 하고 정신없이 적응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주변 사람들의 여행이야기가 들렸다. 무리가 되긴 하지만 좀 더 절약하면 나도 며칠은 여행을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자꾸 내 마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가자. 가보자. 담달의 내가, 다담달의 내가 갚아줄게. 그토록 원한 여행 가보자,라는 목소리.
2. 바다 생각만 하기, 그 이상은 욕심내지 않을 결심
제주도에서 머물 곳을 함덕으로 정했다. 20대 후반 첫 학교 동료들과 함덕에서 이틀을 머물며 바닷가에 신나게 놀았다.(그때 바다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다.) 바다 깊이가 얕고 푸른 에메랄드빛 색깔이 인상적이었던 곳. 아이를 낳으면 꼭 와야지 했던 곳. 그 생각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었다.
딸랑 숙소 하나 정하고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비행기는 출발 며칠 전에 0처리 닷컴으로 예약했다.) 5박 6일 동안 오로지 바다에서만 지내리라. 어린아이들과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들 뿐이라는 생각이 새겨져 있는지라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간다. 놀 수 있을 만큼 물놀이를 한다. 숙소에 돌아온다. 에어컨을 실컷 켜고 쉰다. 밤에 또 바다를 보러 나간다. 맥주를 사 오거나 가게에서 마신다. 나의 제주도 계획은 단순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아침에 혼자 걷는 시간을 잊지 못한다. 눈부시고 고요한 아침, 구름이 낮게 마을까지 내려와 있는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걸어 함덕 바다에 도착. 그리고 할머니들이 하시는 김밥집에 들려 아침으로 먹을 김밥을 4-5줄 사고 다시 산책을 하며 돌아온다. 조용하면서도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습기를 말리던 함덕의 아침을 매일 걸으며 그 고요하고 뜨거운 풍경을 무엇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매해 보아도 늘 푸르른 제주 함덕 바다
하지만 제주도의 한여름 날씨가 5살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기억일까. 아무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바다에서 물놀이를 매일 한다는 것이 욕심일지도 몰랐다. 5살인 아이들이 10분을 걸어 바다에 도착하고 다시 지친 몸을 이끌며 모래를 겨우 털고 10분을 걸어 돌아온다는 것. 지금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물놀이를 마치고 편의점에 들러 막대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어주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어느 호텔 밖에 설치된 물 호스를 몰래 쓰며 모래를 급하게 씻어 버리고 걸어가는 길. 막대사탕 하나를 의지하고 걸어가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023년의 여름은 그때와는 다르다. 아이들은 컸고, 차를 렌트하고 나는 운전을 한다. 바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기저기 유명한 곳을 가고 커피숍을 가고 맛집을 찾아가 본다. 하지만 그때 첫째와 5살 둥이의 뒷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내가 나는 소중하다. 그때 결심했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내 후년에는 좀 더 나아져 제주도에 오겠지. 그 결심으로 5년을 달려왔다.
초등학생이던 첫째는 중학생, 5살인 아이들은 9살이 되었다. 그리고 마흔을 시작하던 나는 마흔 중반이 되었다. 나는 매해 여름 제주에 오고, 제주에 머문 시간만큼 행복을 느끼고 저장해서 남은 계절을 산다. 하늘, 바다, 파도, 구름, 산, 모래, 더위, 비 등 제주도의 모든 것들이 이제 나를 구성하고 나의 행복을 이루는 무늬가 된다. 행복 저장소, 제주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2022 함덕 서우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