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비보호 좌회전 (2)

좌회전 직전에 갖는 걱정과 두려움

by 일주일의 순이


좌회전 신호, 특히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 앞에서의 떨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그 느낌.

너무 두려워서 차를 두고 그냥 도망갈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는. 그런. 상황.


올해 상반기에 나를 가장 심하게 억누르며 괴롭히던 감정은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실체가 없는 미래에 올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이렇게 나를 짓누르던 때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작년 말 한국에 오기 직전의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두려움이 주던 스트레스는 한국에서 캐나다에 가서 반년이 넘도록 큰 아이의 적응을 바라보며 했던 마음고생의 강도보다 몇 배는 강했다.


한국에서 캐나다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만삭이었다. 나는 만삭임에도 캐나다에 간다는 사실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그때까지 나는 ‘어느 장소에 적응’하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걱정해야 할 대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기 직전까지 나는 ‘사람이 낯선 곳에 가면 적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어린이집에 가서 적응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를 보였던 큰 아이는 캐나다에 가서도 다양한 적응의 문제를 보였다. 거의 1년에서 1년 반이 되는 시간이 지나서야 아이는 서서히 적응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부적응이 어쩌면 너무 당연한데,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나.


그리고 아이의 부적응을 마주하는 것이 당시 내가 마주한 가장 큰 걱정이었다.


평범한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보고 있는 것은 나에게 큰 고통이었다.


아이가 캐나다에 서서히 적응이 될수록 큰 아이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둘째 아이의 부적응 문제도 1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큰 아이도 둘째 아이도 서서히 그곳에 적응해서, 아이들의 부적응 문제가 해결되어 내 마음이 편안해질 때즈음부터 한국에 되돌아 올 확률은 높아졌다. 한국에 되돌아오는 시기가 다가 올 수록 나는 한국에서 아이들의 적응이 걱정이 되었다.


캐나다에 가서 아이들이 부적응 문제를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해 괴로워하던 엄마로서의 나의 미숙함을 깨닫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을 수도 있다.


큰 아이가 캐나다에 익숙해질수록 큰 아이는 한글에 대한 거부 반응이 컸다.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큰 아이와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둘째 아이가 과연 한국에 와서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게다가, 해외에서 가족을 돌보는데 지친 나는 나만을 위해 살았던 출산 전의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싶었다. 아이들의 부적응이 걱정은 되었지만, 나는 더 이상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한국에서의 적응을 도와가며, 휴직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복직을 하여 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까지 미리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내가 만들어놓은 공포심은 2월 말에 극에 달했다. 오랜만에 복직하는 나 자신에 대한 걱정까지 겹쳐졌다. 두 아이를 오롯이 혼자 돌보면서 워킹맘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몇 날며칠 나를 뒤척이게 했다.


대체로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겁을 먹었던 적이 많이 없었다. 두렵지 않고, 어렵지 않을 일들만 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일상의 과업이나 적응에 대해 걱정 없던 내가 40대 중반이 되어갈수록 복직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졌던 것이다. 복직 직전에 관리자와 주변 사람들이 학교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정작 나는 자신이 있는데, 주변에서 계속 내가 적응을 잘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부적응만 걱정하다가, 내 복직에 대한 걱정까지 점점 커져갔고, 그 걱정과 불안은 출근을 하던 초반에 극대화되었다. 2월 말에 실제 복직일보다 먼저 출장을 갔고, 출근을 했고, 막상 다시 복직을 하니 내 머릿속은 너무 하얬다. 과연 내가 일을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머릿속은 초기화상태였다.


불안과 걱정이 실제 눈앞에 현실로 닥쳐 내가 그 상황에 처하니 정말 앞이 깜깜했다. 생각보다 너무 무능력해 보이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실망감을 몸소 느끼기도 전에 해결하고 알아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이도 많고 빠릿빠릿하지도 않은 나이 많은 신입. 2월 말 3월 초의 내 모습이다. 내 걱정과 다르게 가장 적응에 문제를 보였던 사람은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들도, 나도 한국에 적응해 내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어쩌면 복직 전에 가졌던 두려움은 당연히 생길 수 있는 감정이고, 적응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당연하다. 인생의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어쩌면 끊임없는 적응의 연속된 시간의 합일 수도 있다. 적응을 못하는 부적응, 부적응의 시간들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그 시간들을 통해 느끼는 불안과 그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편안해짐으로 나아가는 상태들. 그런 끊임없는 반복이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거시 이상할 것도 없고 문제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까지 두려워하고 공포심을 느꼈었을까. 익숙지 않은 것을 할 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감정일 수도 있는데.


마치 비보호 좌회전 직전에 초보 운전자가 아주 극단적인 상황까지 상상하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많이 반복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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