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 : 서점여행자(2)

식물서점 나무들의 심야책방

by 일주일의 순이
"여러분이 사는 동네의 나무는 안녕하십니까?

남산도서관 화요일 10시 2층 초록한 강의실. 길 위의 인문학 강좌에서 도시 나무와 숲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고규홍작가님은 나무칼럼니스트이다. 작가님은 우리 주변에 있는 오래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서울에서 나무가 보존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리고 도시에서 나무에게 주어진 면적이 얼마나 작은지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강의를 듣고 나서 동네의 나무를 보는 눈이 애틋해졌다.


뒤 책방 연희에서 만난 도시건축전문 강사님이 보여주신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공사 전 나무사진을 보며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할 수는 없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강사님은 <여기는 공덕동 식물 유치원입니다> 책을 소개해주셨다. 커뮤니티에서 조금씩 식물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셨다. 책을 읽으면서 작고 여린 존재를 보살필 줄 아는 이의 시선에 따뜻함을 느꼈다.


수많은 식물이 자리 잡은 재개발 단지의 정글을 보며 항상 다짐한다. 내가 모든 식물을 구조할 수 없다고. 재개발 단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능력만큼만 최선을 다해 계속해서 식물을 구조하는 일뿐이다."

<여기는 공덕동 식물 유치원입니다 중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도 재건축 조합 설립으로 회의가 계속 열리고 있다. 용적률 확대. 아파트 가격상승에 대한 청사진을 연일 광고하지만 30년 넘는 동안 우리 단지를 지킨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나는 마음이 씁쓸했다. 회의는 우리만 하는 걸까? 관점을 달리하면 식물이나 나무입장에서는 아파트 건물을 없애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런 나의 생각은 끄적끄적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함께 살아가려는 다정함이 모여 조금만 더 행복해지길 바래본다.

동네 벚꽃나무 원서공원 느티나무

서울로 포도나무


식물서점 나무들의 심야책방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심야책방이 있는 날입니다. 주황색 노을빛이 골목길을 채우는 시간까지 서점지기는 화분을 옮기느라 땀이 삐질삐질 납니다. 가느다란 팔로 이리저리 관엽식물과 책을 옮깁니다. 가운데 있는 탁자는 서점밖에 두었어요. 책방 안을 정리하고 '무엇이든 작아진다' 알약이 들어간 얼음물을 준비했어요. 어떤 손님이 오길래 이리 바쁠까요? 밤 12시가 되자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점지기는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호 서점지기님이 시구나. 문이 작네요. 잠깐 비켜 주세요."

커다란 느티나무 할아버지가 나뭇가지를 모으고 문을 통과해 들어왔어요. 그 뒤로 은행나무 군과 소나무여사님이 들어왔습니다

책방 안이 나무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러다가 서점이 무너질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서점지기는 얼른 노란 얼음물을 나무들에게 주었어요. 물을 마시자 나무들은 작아졌습니다.


" 무슨 일로 오셨나요?"

" 서점지기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요 혹시 나무들이 아파트단지를 재건축한 책이 있나요?"

느티나무할아버지는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나무가 재건축요?"

서점지기는 다시 한번 물었어요. 그때 은행나무 군이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나무 재건축 조합을 만들려고요. 그런데 다른 동네 나무에게 물어봐도 방법을 모르더라고요. 식물서점에 가면 고민을 들어주신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그런데 왜 재건축조합을 만들려고 하시나요?"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아파트를 다시 짓는데 우리들을 다 베어버린대요. 아이 열받아!!!"

흥분한 은행나무 군의 초록잎이 노르스레해지고 떨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나무여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어요.

"은행나무가 그 말을 듣고 회의를 소집했어요. 30년 넘게 같이 살아온 곳인데 사람들이 우리를 없애고 더 큰 아파트를 지을 거라니 믿기지가 않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낯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파트가 재건축된다는 현수막이 걸렸어요. 은행나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는데 이러다 큰일이 날 듯해서 우리가 대표로 여길 온 거예요. 우리 동네 나무들은 불안해서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어요."


소나무 여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서점지기는 이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나무들은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오늘 손님들은 들어올 때부터 잔뜩 굳어 있었거든요.

"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무 재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처음 듣는 거라 서가에서 찾거나 다른 나라에서 출간되었는지 인터넷으로 살펴봐야 해요."

느티나무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우리에게 기다릴 시간이 있을까요?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는 커다란 숲이었어요.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군요."

"사람들이 그렇게 둘까요? 나무가 있어서 좋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걷던 사람들이 우리 쫓아낼 생각을 하다니... 냄새나는

은행알을 더 많이 던져버릴 거예요. "

서점지기는 은행나무 군의 가지를 따뜻하게 쓰다듬었습니다

"그냥 우리가 다 사라지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좋아하는 아파트랑 살라하고 우리가 이사하는 거지요."

소나무 여사의 말에 느티나무할아버지와 은행나무 군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무들의 분노가 서점의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어요. 으스스해진 서점지기는 카디건을 꺼내 입고 한참 동안 나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야책방은 손님이 마음속 답답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는 시간이지요. 서점지기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요. 그냥 들어주는 거지요. 그들의 폭포수 같은 이야기가 잦아들 때까지...


새벽 네시가 되면 알약의 효과가 사라져요. 나무들이 다시 꿈틀꿈틀 커지려고 합니다. 더 있다가는 서점이 부서지겠어요.

나무들은 서둘러 인사하고 서점지기에게 다음 심야책방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도착해야 해서 뒤뚱뒤뚱 걸음으로 골목길을 급하게 빠져나갔습니다. 작은 가지와 마른 잎이 떨어진 자리를 서점지기는 빗자루로 쓸었습니다.


서점지기는 바닥의 작은 놋쇠 문을 열었습니다. 줄로 된 사다리를 내리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서울나무 시골나무' '나무가 열받는 101가지 이유' '노르웨이 숲으로 돌아간 나무' 등등

지하서가를 뒤지려면 하루는 족히 걸릴 듯합니다. 전 세계에서 모은 나무책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거든요.


왠지 서울 여기저기에 사는 나무 손님이 계속 찾아올 것 같습니다.

'나무 재건축 책이라!!!'

속상해하는 나무를 생각하면 빨리 찾아야겠어요. 식물을 쫓아내고 건물만 짓다 보면 지구가 우리를 재건축하지 않을까요? 하얀 먼지를 뒤집어쓴 서점지기는 목장갑을 끼고 계속 찾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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