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산책길(2)

추워도!

by 일주일의 순이

건강할 때 더 몸을 챙겨야 했는데,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이제라도 내 몸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은데, 디스크로 인한 다리 통증과 발목의 마비 증상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되어 속상하기만 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선택한 운동의 시작은 "산책"이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내 3바퀴 도는 것이 목표였고 차츰 그 산책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그러니, 몸과 함께 찾아온 마음의 병도 가벼워지는 듯하다.

요즘 자주 가는 산책길은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부산의 '온천천' 공원이다. 부산의 수영강으로 이어지는 이 내천을 중심으로 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 이 내천의 시작은 저 멀리 부산의 금정구 쪽에서부터 시작되어 우리 동네까지 이어져 와 수영강까지 이어져 마음만 먹으면 긴 거리를 걸으며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실내 운동이 위험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곳곳에 운동기구가 배치되어 있다.


이곳까지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이쁜 꽃을 보기 위함이다. 봄에는 온천천의 양 옆으로 있는 아주 커다란 벚꽃나무들 덕분에, 마치 빨간 머리 앤이 되어 휘날리는 벚꽃들 아래에서 춤을 추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겨울이다. 그러면, 겨울! 하면 생각나는 꽃, 동백을 보러 가야지.

집에서 출발하여 온천천에 도착하면 저 멀리 곳곳에 울긋불긋 꽃송이가 보인다. 그 꽃을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여 다양한 색상의 동백꽃을 눈에 담는다. 그러다 마음에 쏙 드는 동백을 발견하면 더 가까이 다가가 이리저리 관찰하고, 찍는다. 걷다가 멈추어서 찍고 있으면 지나가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무엇을 찍는 고?'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신다. 그러고는 본인들도 핸드폰을 꺼내어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신다. 핸드폰에 꽃 사진이 많아지면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라더니. 내 옆의 어르신들을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싶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다.


작은 꽃이 주는 즐거움, 작은 풀잎들이 주는 싱그러움, 生生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내가 된 것에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젊어서는 이쁜 꽃을 보면 꺾어서 가져가지만, 나이 들고는 이쁜 꽃을 보면 그곳에서 실컷 보고 두고 간다고 했다. 나도 이곳에서 보이는 이쁜 꽃들을 절대 꺾지 않는다. 심지어, 곧 떨어질 꽃송이든 시든 채 매달려 있는 꽃송이든. 한 그루에서 함께 피어난 형제들이니 같이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에 내 핸드폰에 담아 오는 것만으로도 산책은 굉장히 기분이 좋다.

온천천까지 가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철봉이다. 철봉에 매달리기를 자주 하면 디스크에 좋다기에 한번 매달려 보았다. 처음에는 1초도 매달리기 힘들었다. 분명 학창 시절 체력 테스트에서는 20초 가까이 매달려 있었던 것 같아 오기가 발동했다. 매일 매달리기를 하다 보니 그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났고, 이곳은 나의 애착 장소가 되었다.

철봉 아래에는 작은 돌멩이가 항상 놓여있다. 돌멩이를 가운데로 옮기고 두 발을 올리면 매달리기에 딱 좋은 높이가 된다. 두 팔로 매달린 채, 팔에 힘을 주어 철봉을 당기는 느낌으로 힘을 주며 마음을 비운 채 눈을 감는다. 가느다란 철봉에 팔만 의지한 채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 묘하게 참 좋다. 마치 우주의 무중력을 느끼는 기분이랄까. 나의 좁아진 척추뼈들과 디스크들이 쭉쭉 늘어나 건강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이제 족히 20초 버틸 수 있다. 그 사이 나의 손가락들 안쪽 밑에는 올록볼록 물집이 생겼다. 매달리기의 기분 좋은 훈장이다. 집 근처 다른 곳에도 철봉이 있지만 딱, 이곳이 제일 좋다.

그리고 철봉 짝지. 이곳은 나의 종아리를 책임져주는 곳.

언젠가 친정아버지는 종아리가 제2의 심장이라고 열심히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흘려 들었다. 몇 년 전 디스크가 터진 후, 그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의 종아리, 정강이 부분의 감각이 좋지 않고 자주 신경통이 느껴져 힘든 때가 많아 그제야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번 해 보니 처음에는 굉장히 아프지만 그 아픔이 중독성이 있으면서 어느새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그 맛을 본 후, 철봉에서 내려오고 나면 항상 이 기구로 옮겨온다. 깊이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쉰 뒤, 왼쪽, 오른쪽 종아리를 번갈아 마사지한다. 이 기구는 나름 인기가 많다. 사람이 많을 때는 나의 순서를 기다리며 다시 동백을 보러 갔다 오기도 한다. 좋은 건 다 알아보는 모양이다.

하루 일과 중 산책을 다니는 일은 이제 나의 루틴이 되어 가고 있다. 계절이 좋은 날은 집을 나서는 마음이 가볍지만 추운 겨울이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먼저 그날의 바깥 온도부터 체크하게 된다. 그리고 갈등한다. 이런 추위에도 꼭 나가야 하느냐, 마느냐... 그러다 문득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동백을 떠올리며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집을 나서서 곳곳의 꽃들을 찾는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 추위를 견디며 피어난 작은 생명체를 보며 나도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 꺾어버리면 끝나버릴 식물의 삶이지만 열심히 공들여 피어났듯이, 나는 두 발이 있고 어디든 스스로 움직일 수도 있는 생명체인데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


그 덕에 오늘도 마음의 충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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