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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의 순이 Jan 14. 2024

일순이 :  뚜벅뚜벅 서울 산책(2)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할 때 합정

 책방 연희에서 좋아하는 공간을 엽서로 만드는 수업에 참여했다. 마포구 지도에 자신이 자주 가는 장소를 표시하고 선으로 연결하는 강좌였는데 4회 동안 서로의 산책로를 소개하고 엽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곳을 생각하다 자주 걷는 합정역 주변이 떠올랐다.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내려 처음 가는 곳은 카페 리아의 오븐이다. 시끄러운 큰길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길에 프랑스식 디저트를 파는 곳이다. 화려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네에서 소박한 가정식 디저트를 지향하는 곳이라 질리지 않는 맛을 낸다. 아메리카노와 스콘 세트를 시키고 사장님이 틀어놓은 샹송을 듣는다. 다른 곳에서는 걷다가 카페에서 쉬는데 이곳을 걸을 때는 카페에 먼저 들른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의 미소가 산책의 출발선이다.

 카페를 지나 당인리 발전소 반환점을 돌아 풀잎미용실을 지날 때면 꼭 가게 안을 살피게 된다. 할머니 혼자 운영하시는 1인 미용실. 주택을 살짝 개조한 7평쯤 되는 그곳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다. 뽀글이 파마를 하며 보자기를 둘러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백발의 미용사할머니는 바지런한 분이다. 할머니가 가꾸는 화분들은 계절마다 꽃이랑 열매가 실하게 열려 있다. 미용실 유리창도 뽀드득 소리가 날 것처럼 투명하다.

수수책방과 우뚝이가 사라지고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어반스케치를 처음 배웠던 서점, 나의 저녁을 책임지던 소고기국밥집. 사장님이 오랫동안 이곳을 지킬 거라 약속하셨는데 지금은 어디에 계실까? 장소가 없어지는 일은 쓸쓸하다. 분명 그 안에 추억이 있었는데 지우개로 지워진 기분이다. 양화진 역사공원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보며 동네를 지켜온 존재들을 생각한다.


 나의 산책로는 사람의 사람 사이를 잇는 것이다.

그 공간을 애정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그 자리를 지켜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합정을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발자국마다 여러 얼굴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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