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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의 순이 Jan 30. 2024

화순이 : 도슨트를 합니다 (5)

5부. 나의 도슨트 활동




포도맛 사탕 


  내 손에 쥐어진 포도맛 사탕을 잊지 못한다. 무려 십여 년 전, 백발의 할머니께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자이트 가이스트> 전시해설을 마치고 주신 것이다.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연신 말씀하시며 주머니에서 머뭇거리며 포도맛 사탕 하나를 꺼내 주셨다. 주름이 많이 간 손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뜻해서 지금도 그 촉감과 온기가 기억난다. 미술관에서 돌아 나오며 입에 넣은 사탕 맛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른다. 사탕이 톡 쏘는 매운맛도 아닌데 나는 코끝이 찡했다. 

 

  이 날은 내 친구의 예쁜 딸이 태어난 2013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미술관에서 나올 때 눈이 내렸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일기를 썼다.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해서 내 모든 마음을 다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또 너무나 아쉽다고 썼다. 곧 복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안국역 1번 출구


열린 송현 녹지광장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풍문여고 옆 쌈지길과 정독도서관 앞을 지나 미술관을 걸어오는 길은 여전했다. '열린 송현 녹지광장'에서 해질 무렵, 계절 따라 꽃이나 갈대와 함께 붉게 물드는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고 핫한 '아티스트 베이커리'에서 다양한 국적의 점원들에게 듣는 한국말은 생소했지만 말이다.


 나는 4년여의 휴직기간 동안 마무리는 마음에 꼭꼭 담아두었던 것을 다시 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거주할 때 미국 전역의 미술관을 30여 군데 가봤다. 특히 햇빛 좋은 LA "The Getty"에서 고흐의 아이리스 앞에서 해설을 하는 백발 할머니 도슨트의 전시해설을 귀동냥했다. 나도 저렇게 미술관에서 나이 들고 싶었다. 다시 좋아하는 것을 깊이 공부하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귀국하고 복직이 6개월쯤 남았던 어느 날,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나는 도슨트를 신청했다.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계속 미룬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 정말 찾아올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된 상황은 아마 있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정확히 일주일째 지속되는 고열의 원인을 찾지 못해 아이가 대학병원에 입원한 둘째 날이었다. 각종 검사에 지쳐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도슨트.. 할까? 말까?”

 “엄마가 하고 싶으면 해..” 


힘이 없었지만 왜 고민하냐는 듯 바로 대꾸하는 아이의 말에 괜한 용기를 얻었다. 어쩌면 답정너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시 시작하게 된 도슨트 활동은 준비할 때부터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버거움과 부담 속에서 허덕였다.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설렘과 더불어 그때의 희열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미술관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속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고개 넘기와 같은 준비기간을 지나 지난가을, 전시해설을 시작했다.






계속하는 마음


 나는 또다시 곧 복직을 한다. 다시 4년의 휴직을 지나 이제 이렇게 오래 쉴 일은 없는 근무만이 남았다. 복직을 앞뒀으니 지난번처럼 도슨트를 다시 쉬어야 할까. 쉬었어야 할까.


 이번엔 아니다. 

 마음으로 품고 살다가 다시 시작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경험으로 알았다. 그런데 나는 아마 후회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데 도슨트 준비까지, 버거움에 몸부림 칠 모습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마음을 따라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의 토요일, 이번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구상화 그림들 앞에서 눈과 입과 온몸으로 관람객들의 마음에 닿으려 한다. 아마 난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애써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화순이를 마치며


 내 전시도 아니고 내 작품도 아닌데 나는 가끔 박수를 받는다. 한 동안 사랑에 빠진 이 전시와 작품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늘어놓았더니 그렇다. 의례적인 말일지라도 사실 나도 안다. 오늘 나의 언어들이 관객분들의 눈과 귀를 통과해 마음까지 닿은 것을 말이다. 고개를 끄덕여 주시고, 슬며시 웃어주시고 버거운 과찬을 받을 때도 있다. 그냥 휙 보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해설을 들으니 작품이 정말 좋다고, 해설을 안 들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해주실 때 감사한 마음에 나의 고개는 더더욱 숙여진다. 


 미술관과 전시를 좋아하고, 말로 전달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순간들이 과분할 정도로 감사하고 또 감격스럽다.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의 힘듦을 잊고 다시 관객 앞에 선다.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들과 같이 나누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화순이로 화요일마다 글을 쓰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처음부터 화순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림 화(畫), 도슨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요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도슨트에 대한 글을 쓰며 처음 마음과 다시 시작할 때의 마음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을 확인했다. 도슨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도슨트에 대한 내 사랑고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진짜 畫순이가 되었나 보다. 


#도슨트 #미술관





1부. 도슨트는 큐레이터가 아닙니다만, 

2부. 도슨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ㅇㅈ만 있으시다면

3부. 도슨트가 되는 방법과 전시해설 준비 과정

4부. 돈도 안되는데 도슨트를 왜 해?라고 물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5부. 나의 도슨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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