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 산책길 (3)
때로는 조금 벗어나, 해운대 동백섬으로
아침에 일어나 바깥 온도를 확인하였다. 영상 3도. 나쁘지 않다. 그때 커튼 사이로 작은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커튼을 걷어서 바깥을 내다보니 동쪽 저 멀리서 해가 슬며시 뜨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 겨울이어서 다른 계절보다 해가 늦게 뜬다. 굉장히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주말의 늦잠을 조금만 포기하면 일출을 볼 수 있는데 마침 오늘이 그러했다. 주말이어서 온 가족이 다 자고 있는 시간이지만, 지금 조금만 서둘러 나가면 더 근사한 장소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겠다. 그래! 그곳에서 오늘 아침 산책을 시작해야지. 남편을 깨웠다.
"우리 동백섬 가자!"
아직 아이들은 자고 있는 주말 아침, 우리 부부는 서둘러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식탁 위에는 식빵과 샘, 버터를 두어 토스트기에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나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아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엄마랑 아빠는 해운대 산책 다녀올 테니까 배고프면 누나랑 토스트기에 빵 구워서 먹어. 할 수 있지?"
"네. 언제쯤 와요?"
"글쎄, 2시간 정도? 텔레비전 보고 하고 싶은 거 해."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우리 부부의 외출에 큰 제약이 없고, 오히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없는 시간의 자유를 느끼며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목적지는 해운대 동백섬이다. '동백섬'의 이름답게 이곳에는 지금 동백꽃이 한창이어서 겨울에 가면 훨씬 더 멋진 장소이다. 해가 바뀌고 1월이 되었으나, 아직 제대로 된 일출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동백섬에서의 일출이 굉장히 기대되었다. 아침이어서 거리의 차도 없어 평소보다 우리는 일찍 동백섬에 도착하였다. 차를 주차하고 동백섬의 등대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어느새 빨라진다. 드디어 저 멀리서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 하였다.
바다의 저 멀리 지평선에서 뜨는 해님이라. 바다에 그 햇살이 비취어 일렁이는 잔잔한 파도라니. 이리도 낭만적인 일출이라니. 집을 나오며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멋진 아침이다. 아이들 없이 남편과 둘이 왔기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오랫동안 저 해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바다에 비친 저 길고 긴 햇살은 마치 바다의 '길'처럼 느껴진다. 저 '길'을 따라 하늘에서 누군가 내려와 바다 위를 걸어서 이쪽, 동백섬 쪽으로 걸어올 것만 같은 유치한 상상도 하던 그 순간, 항상 마음속에 외우고 있던 시가 갑자기 생각났다. 대학생 때 교양수업 때 배웠던 일본 시인데, 내용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노트에 옮겨 적었던 시
도정
- 다카무라 코우타로-
내 앞에 길은 없다.
내 뒤에 길은 생겨난다.
아아
자연이여
아버지여
나를 홀로 서게 한
광대한 아버지여
내게서 눈을 떼지 마시고 지켜주소서
언제나 아버지의 기백이 내게도 넘치게 하소서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하여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하여
20 때 배웠던 일본인의 시에서 좋았던 점은 바로 '길'이었다. 한자어 '도정'은 길을 의미한다. 내 앞에 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경험과 나의 삶들로, 내 뒤에 길이 생긴다는 표현이 참 좋았다. '아버지'는 만물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를 둘러싼 모든 자연, 신으로부터 보호받고 격려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은 시였다. 분명 한국에도 좋은 시가 있을 텐데, 나는 이 짧은 몇 줄의 시로부터 강렬한 에너지를 얻어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동백섬의 이 햇살에서 불현듯 이 시가 떠올라 마음이 숙연해졌다. 둘러보니 옆의 아주머니가 기도를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이 마치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던 과거의 엄마 모습처럼 느껴져, 나도 가족을 위해 잠시 손을 모아 기도를 하였다.
'2022년,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우리 가족 하루하루 평범하게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건강하기를.'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주위가 더 환하게 밝아왔다. 마음이 가뿐해지고 이제 나의 관심사가 '일출'에서 동백섬 주변으로 넘어갔다. 남편은 본격적으로 러닝을 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걷기 운동을 선택하였다. 함께 왔으나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동백섬을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니 주말인데도 걷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20대의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시거나 동호회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러닝 하는 사람들의 무리들도 보였다. 그들의 사뿐사뿐 뛰는 동작에서 활기찬 에너지와 좋은 기가 느껴졌다. 지금은 내가 산책을 하고 있지만, 다리 힘이 조금만 더 생기면 나도 꼭 러닝을 해야지.
동백섬의 명물, 동백꽃도 만개하였다. 만개한 꽃들 앞에서 이리저리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잠시 멈추어 이쁜 꽃을 골라 애정을 듬뿍 담아 사진을 찍었다.
조금만 더 몸을 움직여 집에서 약간 먼 곳까지 산책을 나오니 색다르고 기분이 좋았다. 주말, 매번 늦잠으로 그동안 못 잔 잠을 보충하며 늘어지게 잘 수 있는 것이 마치 어른의 특권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는데, 이번 기회로 '주말의 이른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멋진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백섬에서의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조금 더 달려서 기장의 연화리 해녀촌으로 전복죽을 먹으러 갔다.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전복죽 2인분인데 생각보다 양이 굉장히 많았다. 아침의 운동을 마치고 즉석에서 만들어진 따뜻한 전복죽과 홍합탕을 먹으며 배를 채우니, 하루의 시작이 참 행복하였다. 그제야 잊고 있던 집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마음이 즐거운 이때. 부부만의 외출도 참 좋았지만 우리는 이미 가족을 이루고 있는 부모이기에 아이들의 빈자리가 느껴졌고 함께 공유할 수 없음에 마음 한편이 허전해졌다. 같은 기억을 갖고, 그것을 추억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다음 주에 또 오자! 그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아이들이 오려고 할까?"
"뭔가 원하는 소원 한 가지 들어준다고 해서라도 데리고 와야지. 꼭 같이 와서 오늘 우리가 했던 것들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그래, 그러자.
꼭 멀리, 몇 박 며칠로 집을 떠나 여행을 가야만 리프레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매일 지내는 일상의 반복된 장소에서 조금만 발걸음을 옮겨도 얼마든지 마음을 정화할 수 있고,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