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몸부림을 많이 쳤던 한 주였다. 미리 생각해 놓은 책과 주제로 고민을 하던 중 뜻밖의 문제로 혼란스러운 마음에 도통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작년에 가장 마음에 울림이 컸던 ‘긴긴밤’과 ‘그냥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혼란스러웠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나의 삶과 자세에 대해 혼자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도 뭔가 잡고 싶었다. 그냥 흘려보내거나 또는 마음속에 묵히면 두고두고 속상할 것 같아 처음에 읽기로 계획했던 ‘그냥 사람’을 다시 펼치며 마음을 다독여 보았다.(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와 다른 방향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둘째 셋째 둥이들 친구들 부모들이 다들 친한 관계를 맺고 집에 초대하면서 모임을 갖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첫째도 있고, 첫째가 이것저것 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 그동안 둥이들 교우관계에 거의 신경을 못 써줬다.(언젠가 첫째 이야기도 써야 하리라. 하지만 오늘은 둘째 셋째를 위한 글을 써야 할 듯하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 누가 누구네 집에 초대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방학 전에는 출근하느라 정신없었기에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지나쳤다. 그런데 방학을 하고 아이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몰랐던 시절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것들이 지금은 따끔거리며 나를 찌르는 느낌이다.
이틀 정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책을 읽고, 방황 아닌 방황을 하던 중 가장 근접하게 잡힌 느낌이 ‘소외’였다.(가장 큰 이유는 친구 엄마들 중 나에게 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나와 아이들이 소외당하는 느낌? 물론 과도한 해석이고 어찌 생각해 보면 혼자 질질 짜는 찌질이 행위다. 게다가 그동안 철저히 내 위주 관계를 위해 노력하며 살았으면서 이제야? 결국 나는 그 소외감이 그들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것임을 아프게 인정했다.
인정하고 나니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라고 말한 작가처럼 이제야 소외라는 말이 아프게 직접 나를 향하니 나도 모르게 쌓아두었던 자만심, 자부심이 부끄럽고 어지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다 <어른이 되면>의 감독 장혜영 님과 중증장애인 동생 장혜정 님의 이야기인 ‘다정한 언니의 시간’ 챕터를 읽으며 나도 나의 시간을 ‘다정한 엄마의 시간’으로 바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혜영 님이 중증 장애인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필요한 두 개의 시간을 나에게도 적용해 본다. 하나는 나의 시간이고, 하나는 아이들 엄마의 시간이다. 아이들을 무작정 어린이집에, 학원에, 학교에 보내며 나 혼자 썼던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감을 전제로 하는 진짜 나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워킹맘이라 너무 힘들어’,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해’를 외치며 방치했으면서 막상 그 결과를 눈에 보니 온몸이 힘들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로 아이들이 빠진 나만 즐기는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장혜영 감독님처럼 ‘타인을 위해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고 동시에 진정한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충분히 애쓰는 존재’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어 감사하고 그동안 ‘이 정도 했으면 괜찮지’ 하며 더 이상 주변을 살피려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여 부끄럽다. ‘세상엔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은데 다정함도 그중 하나’라고 말한 작가처럼 나도 이번 참에 다정함을 보고 듣고 배워가며 다시 부모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진실은 잘 정리된 핵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맞다. 진실은 내 책상 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 이론에, 핵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일부터 당장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지만, 천천히 아이들을 위해 사람들 사이사이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초대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초대해 보고, 엄마들 모임에 껴달라고 먼저 이야기도 건네보고, 초등학교 입학하면 더 낮은 자세로 아이들이 맺고 싶어 하는 관계에 도움이 되어주련다. (비록 휴직은 못하였으나 열심히 안테나를 켜보고 살아야겠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진실이, 나의 아이의 또 다른 즐거움이 새롭게 태어나길 간절히 원한다.(물론 엄마들 사이의 관계, 아이들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여기저기서 들었기에 핑크빛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또한 엄마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손 내밀어주고,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힘든 일을 극복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돕고 싶다. 그리고 최대한 화내지 않고 많이 대화하기, 여행할 수 있을 때 여행하고, 같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새 훌쩍 자라 혼자서 무엇이든 한다고 할 때 아이들에게 서운하다 생각지 않고 놓아 주리라.
‘그동안 세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세상에 대해 읽고 쓴다는 일이 말할 수 없이 부당하게 느껴진다. 부끄러움을 견디면서 쓴다’는 문장처럼 그동안 아이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만심과 자부심에 아는 척하며 지낸 삶이 많이 부끄럽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견디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제라도 다시 아이들을 찬찬이 바라보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기쁘기도 하다. 부족하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줘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나 역시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응원하는 그날, 이 글을 웃으며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