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이 : 부끄러움을 팝니다 (4)

착한 어른 아이 2

by 일주일의 순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동안, 나는 '착한 어른 아이'로서 살아가며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훌쩍 자란 착한 어른 아이의 자녀들 역시 그 엄마를 쏙 빼닮아 '착한'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착한' 아이로 자란 첫째 아이(이하 첫째)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 거절하는 방법을 몰랐다. 순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인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기가 센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었다.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가자, 자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친구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 채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OO이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나랑 절교한다고 하면 어쩌지?'라며 거절하면 친구가 자신을 버릴까 봐 두렵다고 하소연하는 첫째에게, 네가 거절한다고 해도 OO 이는 너랑 계속 친구를 할 거라고, 그 친구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너에게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라고 여러 차례 말해주었다. 하지만 위로와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실제의 상황을 가정하여 거절하는 연습을 시켰다. 무리한 부탁을 쉽게 하는 친구 역할을 내가 맡아 실제처럼 부탁을 하면, 첫째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 내가 이미 가르쳐준 - 거절하는 말을 내뱉었다. 여러 번 연습하다 보니 점점 첫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훨씬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습한 것을 바탕으로 실전에서 용기를 내서 거절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친구로부터 무덤덤하게 '알았다'는 정도의 반응이 되돌아와서 첫째는 거절해도 무사(?)할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한두 살 더 나이를 먹어가며 더 이상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안심이 되던 즈음, 비슷한 문제로 둘째가 그 고민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착한' 아이로 자란 둘째 아이(이하 둘째)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거절이 곧 갈등을 유발하는 -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나쁜 행위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둘째는 첫째보다 더 '착한' 아이였던 것 같다. 거절하면 친구가 상처를 받기 때문에 친구의 부탁은 꼭 들어주어야 한다면서도, 막상 그 부탁을 들어주자니 자신의 역량이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다며 울었다. (둘째의 친구는 자신에게 필요한 '포켓몬 카드'를 사 오라고 시켰었다.) 그런 부탁은 네가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둘째는 꼭 들어주어야 한다며 팔짝팔짝 뛰었다. 그래서 혹시 누군가가 네 부탁을 거절하면 속상하고 상처를 받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자신이 받기 싫었던 상처를 친구에게 주는 것이 싫었던 것이었다.

평소에 사이좋게 지내라는 둥 우정이라는 덕목을 유난스럽게 강조한 기억이 없는데, 아이들은 유독 친구관계에서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혹시 그것은 타고난 성향일까? 그리고 그 성향은 나로부터 물려받아 유전이 된 것일까? 만약에 그것이 성향 탓이라면 조금은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나의 양육 방식으로 인해 필요성을 느껴 선택하고 체득하게 된 것이라면? 가장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인 엄마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길러진 생존 방식이라면?

이런 궁금증과 고민을 해소하고자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대해 검색해 보다가,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착한 자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때만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나 엄격한 집안 교육 때문이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유아적 의존 욕구를 억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다. 나의 경우 상당히 엄격한 부모님 - 특히 아버지 - 밑에서 자랐다. 오빠는 반항하며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저항했지만, 나는 순응했다. 그 결과 지금처럼 '착한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나 역시 엄격한 부모인가?

사실 얼마 전 나는 황당한 직면을 해야 했었다. 첫째 아이의 논술학원에 시간 변경 차 문의 전화를 했었는데, 몇 마디 나누다가 갑자기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어머니, 혹시 좀 많이 엄격하신 편이세요?' 이 '엄격'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랐다. '글쎄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니, 다른 게 아니라 첫째가 '평소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데 '잔소리'밖에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보통 아이들의 반응과 사뭇 달라서 좀 염려가 되었다고 덧붙셨다. '어머니, 아이를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마시고요, 더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세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아이예요.'

사실 이 말은 내게 아이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다 나에 대한 비난으로 더 느껴졌지만, 애써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전화를 끊었다. 분했다. 잔소리가 엄격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니,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를 독려하기 위해 잔소리를 했는데, 했을 뿐인데...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움직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내가 바라는 대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한 것은 맞았다. 몰랐는데 나는 꽤 엄격한 틀을 가진 엄마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요즘 들어 아이는 부쩍 내 잔소리와 통제를 불편해하고 불만을 가지곤 했다. 물론 말로써가 아니라, 툭 내민 입술 모양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일본 최고의 교육심리학자인 가토 다이조는 자신의 저서 '착한 아이의 비극'에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부모가 아이들을 키울 것을 제시했다.

1. 마음껏 분노를 느끼게 해라.
2. 남에게 폐 끼치는 연습도 필요하다.
3. 자신의 확신을 선택하는 용기를 북돋워 주어라.
4. 착한 아이가 아닌 '좋은 아이'로 키워라.
5. 억압된 진짜 마음을 깨닫게 해라. - 부모에 대한 숨겨진 분노를 느끼게 하기
6. 제2차 억압까지 해소시키자. - 분노와 사랑을 동시에 느끼는 모순적인 상황을 억압하지 말고 받아들이도록 이끌기
7. 가면을 벗고 하나의 얼굴로 살게 해라.
8. 부모가 먼저 욕심을 버려라.

그가 제시한 방법들을 쭉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그동안 어떠한 것도 아이에게 제대로 베풀어 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분노를 느껴 잔뜩 찌푸린 얼굴이나 험한 단어로 이를 표현하면 '예쁜 말, 예쁜 표정!'이라고 말하며 이를 억압했으며, 층간소음을 비롯해 사소한 언행으로라도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종종 강조했고, 아이에게 메뉴를 선택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생활 중의 일들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모두 내가 나서서 계획하고 이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부모가 먼저 욕심을 버려라'는 항목을 가장 실천하지 못했다.

착한 아이로 자라서 엄격한 엄마가 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교육받았던 방식 그대로 아이에게 해 주면서 꽤나 좋은 부모, 신경 써주는 부모라고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라도 문제점을 깨달았으니 스스로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위의 8가지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우선 가장 중요한 잔소리부터 줄이고, 아이가 과정을 선택해 결과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겠다. 그리고 표현하는 감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존중해주고, 다소 피해를 주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존중해 주어야겠다.

이 모든 것들이 힘들지만 별로 '안 착한' 엄마에서 '착한' 엄마로 변신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들이겠다 싶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억압된 욕구들 역시 존중하고 바라보아 주면서 자연스럽게 '안 착한 어른'이 되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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