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산책길(4)

놀이터에서

by 일주일의 순이

겨울의 아침 산책은 다른 계절보다 다소 힘들다. 해가 늦게 뜨니 아침에 눈도 잘 떠지지 않고 따뜻한 침대 속에 계속 머물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다 타이밍을 놓치고 아이들의 등교 준비에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내게 되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괜찮다. 예전 같으면 하루의 루틴이 무너지는 것에 신경이 많이 쓰였을 텐데 이제는 제법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뭐. 그냥 가까운 곳에 산책 다녀와야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게 된다. 산책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걷는 사람의 '마음가짐'이기에 항상 부담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이 춥다. 이런 날은 멀리 가지 않고 아파트 내의 놀이터를 찾는다. 오후에는 아이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오전에는 다들 출근하랴, 유치원 가랴, 학교 가랴, 놀이터는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이 된다. 놀이터는 아이들만의 공간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어려서는 놀이터에서 열심히 친구들과 뛰어놀았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죽순이 엄마 노릇을 하였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 놀이터에서 음료수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며 아이들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었다. 그때는 이 놀이터의 진 면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계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놀이터의 모습이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놀이터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유서 깊어 보이고 마치 우리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토토로가 살고 있을 듯하다. 놀이터의 테두리 주변을 천천히 돌고 있노라면 마치, 저 어른 나무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혼자지만 외롭지 않고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종아리 마사지를 한다.

아이들이 오르내리는 이 철로 된 둥근 사다리 부분에 나는 다리를 뻗어 올리고 종아리는 비빈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열심히 마사지하라는 평소의 아빠 말씀이 잔소리 같았는데 이제는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었을 때의 시원함을 알게 되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하게 된다. 양쪽 다리를 번갈아가며 뭉친 종아리를 풀어주고 있노라면 어느새 미끄럼틀 밑에 적힌 아이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온다.

"XX이랑 YY는 사귄대요~"

"여친 구함!"

나 어렸을 때도 놀이터에 항상 낙서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요즘도 마찬가지다. 종아리를 비비며 느끼는 통증으로 얼굴은 찌푸리고 있는데 마스크 너머의 입은 웃고 있다. 참 신기하다. 다른 시대를 살아가지만 아이들의 놀이는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비슷한 시간에 놀이터를 오면 만나게 되는 분들이 계신다. 한 분은 연세가 꽤 많이 드신 백발 할머니이고, 한 분은 키가 크고 자세가 좋은 남자분이시다. 두 분은 아마도 모자 관계인 듯하다. 할머니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지팡이를 집고 천천히 놀이터를 걸으신다. 그러면 그 남자분은 반발짝 뒤를 따라 걸으신다. 많은 대화를 나누시지 않으시지만, 분명 어머니를 걱정하여 뒤따라가는 아들처럼 보였다. 한 발짝 뒤가 아니라, 딱 반발짝 뒤에서 걸어가며 어머니가 혹시나 염려되어 같이 걸으시는 듯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방해되지 않게 나의 걷는 속도를 조절하며 머릿속으로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분은 직업이 없나? 50대 후반 정도면 아침시간이 바쁠 텐데, 어떻게 이 시간에 어머니의 걷는 것을 도울 수 있지? 저 아저씨는 그만큼 효자인가'

'저 할머니는 어디가 아프셨을까? 걷는 자세로 보면 중풍 같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젊어서 사이가 좋은 모자였을까? 그래서 지극정성이신가?'

'혹시, 저 아저씨는 젊어서 아주 불효한 자식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제 아픈 어머니에게 미안해서 저렇게 잘하려고 하시는 걸까?'


남의 인생에 무슨 관심이 그리 생기는지, 정답을 알아내지도 못하면서 계속 눈은 그분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저 아드님은 어머니를 걱정해서 뒤따라 가시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넘어지실까 걱정되어 뒤따라간다면 양팔을 움직이거나 뻗어서 어머니를 더 보호할 텐데 그런 동작이 전혀 없는 채, 두 손은 뒷짐을 진채 천천히 따라 걷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아저씨의 표정도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를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굉장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아침 산책의 여유를 느끼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뭘까? 그럼 왜 일을 해야 할 시간에 어머니를 따라 뒤에서 걷고 계신 걸까? 정답은 모른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이 든 아들이 노모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어머니 앞에서 혹은 옆에서 걷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걷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젊은 시절보다 허리가 굽어 키는 더 줄어들었을 테고, 다리에 힘은 빠져 걷는 속도가 느린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자신을 키워준 세월의 흔적들이 보일 것 같다. 왠지 부모님의 뒷모습을 본다는 것이 슬플 것 같지만, 아드님의 표정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 그분들의 과거 모습을 알 수 없으나 현재는 그러했다. 누구를 위해 아침 시간을 희생하는 것 같지도 않고, 묵묵히 각자의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다소 쌀쌀한 겨울 날씨이지만 같이 걷는 두 분을 둘러싼 공기는 따뜻해 보였다.


나도 친정엄마와 옛날에 살던 동네에 가서 같이 걸었던 적이 있다. 나는 파워워킹을 하며 걸었고 엄마는 천천히 걸으셔서 서로의 걷는 속도가 달라 결국은 엄마가 뒤따라 오시고, 나는 걷다가 쉬었다가 하며 엄마의 속도를 맞추었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난다. 나도 하루쯤 파워 워킹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그냥 천천히 엄마의 속도에 맞추어 옆에서 걸으면 되는 건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빨리빨리 걸어갔을까. 아이들을 키우며 같이 걸어야 할 때는 항상 아이들의 걸음걸이에 따박따박 맞추어 걸었는데 부모님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었다.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한번 친정엄마를 모시고 그 장소로 가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엄마의 속도에 맞추어, 아니면 반발짝 뒤에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걸어야지.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슬퍼진다.

항상 마음이 조급한 내가 먼저 놀이터를 떠나기에 그분들이 아파트 어느 곳에 사시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 공간을 지나갈 때면 항상 두리번거리게 된다. 만약, 내가 놀이터로 산책을 나가 그분들을 발견한다면 항상 두 분이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작가의 이전글목순이: 취미는 사랑(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