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 산책길(5)

겨울밤 산책의 묘미

by 일주일의 순이

1년 4계절 중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겨울이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여서 그런지 추위를 굉장히 많이 타고 발이 너무 차가워 가끔은 양말 2개를 신고 다닌다. 부산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정말 너무 싫다. 학생 때는 4계절이 뚜렷한 것이 우리나라의 장점이라고 배웠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었고,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겨울에는 수북이 쌓여있는 두꺼운 겉옷들로 방도 지저분해져서 달력이 점점 12월을 향해가면 정말 기분이 처지곤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으로 오늘의 온도부터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 뚜벅이 생활을 하는 나는 출근 시간이 빨라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겨울은 한없이 춥고 싫은 계절이었다.


지금의 나는 잠시 일을 쉬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다시 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수없이 고민한다.

'걸으러 나갈까? 말까? 아이~추운데. 좀 더 자자...' 자신과의 대화에서 이기는 날보다는 지는 날이 더 많았다. 아침시간을 잘 활용해야지 마음먹었지만, 계절이 따라주지 않으니. 이른 아침 너무 추우니까. 나는 겨울에 약하니까. 등등의 다양한 핑계를 대며 오전 시간을 빈둥빈둥거리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꾸 나태해져 가는 나 자신을 보다 못해 그날은 굉장히 추운 날이었지만 '무조건 집을 나가자!' 고 마음먹었다. 우선 핫팩을 내복 위에 한 장 붙이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기모가 들어있는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역시 춥기는 추웠다. 그래도 이미 집을 나섰으니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자. 출퇴근할 때 내가 스쳐 지나갔던 춥디 추웠던 겨울의 공간들인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복장이 운동복으로 무장되어서 그런지, 뱃속에 붙어있는 핫팩 덕분인지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몸의 온도가 점점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얼굴은 굉장히 차갑다. 마치, 겨울에 야외에 있는 따뜻한 온탕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으면서도 나의 머리로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길을 따라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천을 두고 만들어져 있는 공원. 최근, 추운 겨울 이 공원까지 온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동안 나태했던 덕분인지 조금 멀리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집에서 15분 정도의 거리로 결코 먼 곳이 아니지만 체감상 느껴지는 거리는 이상하게 '겨울'만 되면 너무 멀게만 느껴져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와보니, 공원 잔디밭에 뭔가가 세워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저녁에 이쁜 불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 장식물들이었다.


'어랏? 신기하다! 작년에는 이런 것 없었는데?'

이 동네에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장식물들이 꾸며져 있었다. 밤에 와서 보면 참 예쁠 것 같았다. 그동안 큰 딸은 겨울이 되면 항상 부산 남포동의 국제시장에 있는 불이 들어오는 큰 트리 장식을 보러 가고 싶어 했다. 어릴 때 몇 번 갔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듯하였는데, 코로나가 터진 이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꺼림칙하여 그 후로는 발길을 끊었다. 그 공원의 장식물을 본 순간, '저녁에 다시 와야지! 꼭 보여줘야지.' 생각을 하며 여기까지 산책을 나와 저 새로운 문물을 발견한 자신을 칭찬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의 심리는 참 이상하다. 돌아가는 길은 더 멀다. 더 춥다. 발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데 제자리걸음 하는 마냥 집에 도착하지 않는다. 다리가 점점 아파와서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잠시 앉아 쉬었다.

'어? 뭐지? 왜 따뜻하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 의자를 다시 살폈다. 오호라! 열선이 들어오는 버스 정류장 대기 의자였다!!! 정말 새롭다!!! 나의 기모바지를 뚫고 느껴질 만큼 내가 좋아하는 뜨거운 온도! 옆을 살펴보니 태양열로 만들어진 듯하였는데 온도가 39도라고 적혀 있었다. 와...! 이런 의자가 생기다니. 기분이 정말 좋다! 겨울이면 항상 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이런 것이 생기다니.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나, 너무나도 감사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좋아하겠지!

이런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고맙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을 꼬드겼다. 추운 밤이지만, 엄마가 너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나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제 머리도 점점 커서 부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무조건 반항부터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지만, 결국 '아이스크림'에 아이들은 넘어왔다. 온 가족이 무장하였다. 남편과 딸, 아들, 그리고 나. 다 같이 집을 나서니 오전보다 더 추운 바깥 온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살짝 신이 났고 아이들이 점등된 장식물들을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일지 살짝 설레기도 하였다.


짜잔~

와!! 우리가 발견한 곳은 내가 보았던 낮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황홀하고 멋진 모습이었다. 사실, 낮에 혼자서 본 공원의 모습은 조금 쓸쓸하기도 하였다. 겨울의 나무들은 잎들이 다 떨어져 애처로워 보이 기도 하고, 주로 오전 시간에 걷는 사람들은 가족단위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 중년분들, 혹은 혼자 나와 걷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밤을 맞이한 공원은 낮과는 다르게 눈부셨다.


까만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장식물들은 마치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너무 아름다웠고,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핸드폰 카메라를 켠 채, 이리저리 이쁜 장면을 담으려고 아이들을 줄 세우기도 하고, 웃으며 대화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많아 활기를 띄었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가장 훌륭하여 카메라는 그만큼 잘 담지 못한다. 그러니, 여러 번 아이들에게 '웃어봐라, 앉아봐라, 브이 해봐라' 등등을 시키며, 아이들은 잘 따라 하다가도 짜증을 내기도 하며 우리는 그 장소를 만끽하였다.


큰 딸의 작은 소원이 이루어졌다. 멀리 번화가에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공원에서 멋진 겨울밤을 느낄 수 있다니. 이렇게 시민을 위해 신경 써서 꾸며주신 관계자 분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 강을 건너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 장소에서 들렸던 사람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주 조용했다. 조용한 적막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저 불들을 우리 부부는 한동안 멈춰 서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뭔가,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추운 겨울, 웅크러지고 작아진 나의 심장과 몸들을 낮의 태양이 아닌 밤의 고요한 저 불들이 녹여주고 다시 쫙 펴주는 듯했다. 낮동안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하는 많은 시민들을 응원해주는 불빛이었다.

"얘들아, 엄마 아니면 너희 못 봤겠지? 좋지? 우리 또 오자"

"그때도 아이스크림 사 줄 거예요?"

"그래!"


우리는 집으로 올라가며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걸어오며 주위 사람들이 없을 때 마스크를 내려 한 입씩 먹어가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발견한 버스정류장. 텅 비어있는 의자!

"얘들아, 저기서 쉬었다 가자!"

"귀찮아 귀찮아, 빨리 집에나 가지!!! 어랏?"


낮의 나의 반응과 똑같았다. 푸하하하. 마치 다른 사람들이 없어 우리는 그 긴 의자에 쪼롬히 앉아서 열심히 엉덩이를 데우고, 입으로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머릿속으로는 텅 빈 채. 아무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겨울 산책도 나쁘지 않네. 최근 들어 아주 오랜만에 겨울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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