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이 : 취미는 사랑(5)

나는 너와 함께 다시 자라는 중이야.

by 일주일의 순이

사실 난 과거로 돌아가는 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저것 배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과거를 소환해야 할 때가 있다. 대학원에서 연극치료 수업을 받을 때, 행복교실 지니샘의 NLP 심리치료 연수를 받을 때,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과거 그 순간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으면 활동을 잘 따라가다가도 멈칫한다. 부정적 감정으로 남아있는 순간으로 돌아가 긍정적 감정으로 전환하거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안아주라고 하는데,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건지 언제나 과거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가 끝났다. 아물고 있는 상처를 다시 헤집는 느낌이다. 다시는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참 정이 없으셨다. 체벌이나 학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랑 받았다는 느낌도 없다. 부모님은 두 분이서만 작은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셨다. 처음에는 극장 앞에서 쥐포, 오징어 등을 파셨고, 극장이 망하고서는 분식집, 그 다음에는 순댓국집을 하셨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말에 가게 일을 도왔다. 엄마나 언니가 구운 오징어를 봉지에 담았고 거스름돈을 계산했다. 6학년때 이미 라면, 국수 같은 건 너끈히 끓여 손님 앞에 내보냈다. 주말마다 가게에 오라는 엄마의 호출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순댓국집을 하면서부터 집 안에 온통 돼지 기름 냄새가 났다. 청소에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가게에서 일하지 않을 때는 집을 청소했다. 주말에 가족들끼리 놀러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것이 겁이 났다. 육아 방식이나 애착도 대물림된다고 하는데, 내가 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아이도 나처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어쩌지?

하지만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두려움은 행복으로 변했다. 아이를 보러 조리원에 온 친구들에게 "내가 이 아이를 낳으려고 세상에 태어났지!"란 망언을 할 만큼 기뻤다. 아이는 행복 그 자체였다. 물론 육아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었으나 그 모든 것을 견딜 만큼 아이는 이뻤다. 온전히 육아에 집중했던 첫째와 둘째의 육아휴직 시간은 아이들에게 내 자신을 갈아넣은 시기였다.

그러나 언제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두려움은 행복으로, 행복은 다시 불안으로 변했다. 나는 내 아이가 어릴 적 내가 겪은 모든 불행의 사인들을 겪지 않기를 바랬다.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엄마 아빠를 기다리지 않기를. 12살부터 혼자 밥을 해먹고 도시락을 싸지 않기를. 내 미래와 진로 고민을 함께 해 주기를. 가족끼리 단란하게 여행 가기를 바랬다. 뿐만 아니다. 내 아이가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육아서를 읽고 맘카페를 들락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시대는 맘만 먹으면 모든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수많은 정보를 밤새 찾아보며 고민했고 과감하게 지갑을 열었다. 아이가 자기 결대로 자라면서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소위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영어 유치원,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았지만 소신있게 공동육아 어린이집, 협동조합 방과후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 코스 역시 결코 돈이 적게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학교 성적이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사교육을 시키고 운동을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어서 운동 레슨도 보냈다. 예민한 사춘기를 겪는 딸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상담도 시작했다. 독서와 글쓰기라는 평생 습관을 위해 책 읽는 시간을 정해 매일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썼는데도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었다. 좋은 걸 알면서도 경제적 여건 때문에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가난은 죄라고 느껴졌다. 게다가 아이의 건강, 안전, 교우 관계, 사회 생활까지 모든 것을 신경써야 했다. '자식은 번뇌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심지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하고 싶은 거하며 재미있게 살았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이 마음 고생은 언제 끝날까? 앞으로 남은 아이의 대입, 취업, 결혼, 그리고 손주 육아까지. 평생 이 불안이 끝나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으로까지 번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안과 번뇌와 후회로 변한 걸까?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중>


좋아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을 읽다가 이 부분이 너무 좋아 늘 메모하고 인용하고는 했다. 그냥 이 글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아이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지구, 아이는 달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온 달은 그러나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구 주위를 돈다. 만약 지구와 달이 서로 너무 사랑하여 끌어당기면 충돌하며 자신을 잃고 말 것이다. 결국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관계의 균형이 필요하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니 나는 아이를 통해 내 어린 시절을 보상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불안을 조금 걷어내자 다른 사실이 보였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이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을 만큼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나도 1살 때 내 아이처럼 사랑스러웠을 것이고, 5살 때 내 아이처럼 재롱을 부렸을 것이며, 12살 때 친구들과 함께 만화를 읽고 그림을 그리며 우정과 낭만을 쌓아갔을 것이다.

한편 부모이기도 한 나는 어렴풋이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외롭게 두었는지, 왜 내가 사랑받는다 느끼게 하지 않았는지, 원망이 많았는데 조금은 알 것 같다. 부모님에겐 엄마, 아빠의 삶 이외에 다른 삶이 존재했다는 걸. 부모로써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당장 생계를 이어가는 문제가 더 시급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사고 치는 큰 딸보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둘째 아들보다, 제 앞가림 잘하는 막내에게 시선이 덜 갔을 수도. 어쩌면 똑똑하면서도 딱부러지는 막내가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아이는 멈춰있지 않다. 아이는 계속 자란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나도 자란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내 안의 과거를 다른 빛깔로 칠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어떤 심리치료보다 더 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음의 힘이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바란다. 언젠가 내 아이들이 지구를 도는 달을 떠나 자유롭게 우주를 날아다니는 소행성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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