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요즘 초등학생들이 읽는 책을 자주 읽는다. 아이들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과 그 속의 백성들의 삶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참 좋다. 최근 아동용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그 속의 여성의 삶에 대해 조금 더 눈길이 갔다. 예전 조선시대 때에는 양반집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함부로 외출할 수 없었다. 외출할 때 얼굴 전체를 내보이면 안 되었기에 항상 장옷이나 얼굴 가리개용 쓰개치마를 이용하였다. 분명, 학생 시절에 다 배운 내용이어서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두 발로 마음껏 마을을 걷지도 못하는, 자유가 없는 삶이라니 참 억울하고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은 그런 장옷이나 쓰개치마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였겠지만, 지금의 세대들 눈으로 보면 '정말 거추장스러운 물건, 필요 없는 물건' 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상상만 해도 답답하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산책에 꼭 필요한 것이 쓰개치마였다면 요즘 내가 꼭 챙기는 물건들은 산책을 즐겁게 도울 수 있는 물건들이다.
첫째, 핸드폰. 핸드폰이야 이제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만능 물건이다. 핸드폰 내에 자동으로 탑재되어 있는 '헬스 앱'은 저절로 걸음 수를 측정해 주며, 거리를 계산해준다. 그리고 그 속의 지도를 보며 어디로 가더라도 절대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는 삼성 핸드폰의 '삼성 헬스' 어플의 가장 좋은 점은 함께 걷는 것이다. 이 어플에 등록되어 있는 지인들과 경쟁을 할 수 도 있고, 매달 주어진 목표를 향해 세계인들과 함께 걸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 걷더라도 '남과 함께' 걷는다는 동지애를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요즘은 다양한 어플이 굉장히 많다. 일정 거리를 걸을 때마다 응원해주는 목소리가 나오는 어플, 걸을 때마다 포인트를 쌓아서 커피 한잔을 사 먹을 수 있는 어플. 다양한 방법으로 현대인들의 걷기를 격려하고 돕는다.
두 번째, 집을 나갈 때 꼭 챙겨 나가는 것은 무선 이어폰이다. 나는 원래 음악 듣기를 좋아하지 않고, 좋은 신제품이 나와도 평소 사용하던 구식 물건을 더 아끼는 편인데 어느 날, 무선 이어폰이라는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유선에서 무선으로 선 하나 없어진 것뿐이데 거추장스럽지 않고 굉장히 편하였다. 바지 뒷주머니에 핸드폰을 쏙 넣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걸으면 그때부터는 내가 사는 세계가 바뀐다. 핸드폰에서 나오는 노랫말에 집중하여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강의를 들으며 그 강의에 쏙 빠져 다양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걷기에 집중할수록 그 강의 내용도 더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이 움직이는 신체와 생각하는 뇌가 일체 되는 경험을 한다. 신기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렁치렁한 줄이 달린 이어폰에서 이젠 깔끔하고 스마트해진 이어폰. 아마 처음부터 무선을 사용하는 젊은 세대라면 이런 변화의 소소한 기쁨을 모를 수도 있다.
세 번째, 편한 신발이다. 어제 읽은 아이들 책에서 보면 과거 백성들은 모두 짚신을 신고 다녔다. 짚신을 사지 못하면 스스로 짚을 꼬아서 신발로 만드는 것을 부모로부터 배워야 했고, 한겨울에도 얼음 같은 발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짚신이 다였다. 참 마음이 아팠다. 요즘은 얼마나 좋은 신발들이 많이 나오는데... 신발 매장에 가보면 같은 운동화라도 여성화인지 남성 화인지에 따라 밑창의 쿠션이 다르다고 한다. 러닝화, 워킹화, 신발의 쿠션감 등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신발이 존재한다. 여성이라고 해서 꼭 여성화를 신을 필요는 없다. 요즘 내가 즐겨 신는 신발은 대부분 남성화이다. 발 감각이 예민해져 딱 맞는 신발을 찾기가 매번 힘든데 고르고 고르다 보면 항상 남성화를 신게 되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신어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신발을 주문하면 항상 실패해서 결국은 반품해버린다. 그래서 신발만큼은 꼭 매장에 들러서 다양하게 신어보고 정말 고민하고 고민해서 장만한다. 한편으로 참 웃긴 것이, 과거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은 지금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거리를 걸어 다녔을 것이다. 수백만 리를 걷는데 다리와 발을 오로지 짚신에 의지하였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적게 걷고, 그 걷기도 '이동의 필수'가 아닌 '산책, 운동' 등의 도구로서 걷는 것인데 이렇게 좋은 신발을 고르고 고른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 발에 딱 맞는 편한 신발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걷기의 자율적 의지'가 아닐까 싶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여서 깨닫기 힘든 부분이다. 내가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걸을 수 있다' 고 생각하였는데 과거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높은 관리자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고, 임금님이 행차하면 그 자리에서 엎드려야 했다. 태어나보니 신분이 미천하여 남에게 자신의 몸이 매여있어 스스로 의지로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도 없었다.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어디를 가든 부모나 남편의 허락이 필요하기도 하고, 외출을 하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 했고, 몸의 일부가 드러나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과거 선조들의 삶을 돌이켜보니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살고 있는 시대가 다르니 그들과의 비교가 현명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적어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신체가 허락하는 한, 원하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의 의지대로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일상생활 속에서의 돈벌이, 육아, 가정일 등으로 우리는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1년의 시간이 뚝딱 지나있음을 발견한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만 시간을 내어 주변을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0분이든, 20분이든. 숲 속이 아니라도 잠시 내가 있는 도시의 건물들 사이를 살짝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자유로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유와 시간이 있어야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으로써 시간을 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은 핸드폰도, 이어폰도 그 무엇도 아니다. 걷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 마음 하나만 있다면, 굳이 내가 얼마를 걸었는지 측정하지 않고 기록에 의미를 두지 않고도 신이 날 것이며 귀에 이어폰을 꼽지 않아도 지나가는 소리들이 나를 지지해주는 잔잔한 응원의 소리로 들릴 것 같다.
햇살이 좋으면 좋은 대로, 미세먼지가 많으면 그에 맞게 준비를 해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산책하는 이 순간의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평일이 힘들면 주말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