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거울을 바라보는 시간(1)
'J'를 위한 변명
회를 담아둔 접시가 뒤집혀 흙바닥에 회들이 굴러 떨어져 있다. 그 위에 초장이 흘러내려 핏빛 같은 것이 바닥에 낭자하게 흘러있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나는 적어도 이날 하루 동안 더없이 좋은 엄마였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순간 내 머릿속에 이성의 끈을 툭 하고 끊어지게 만들어 버렸고, 나는 불을 뿜는 한 마리의 용으로 변신하고 말았다.
제주로 여행 떠나기 얼마 전, '제주 원담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닷가에 둥글게 원 모양으로 돌담을 쳐놓고, 간조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손으로 직접 잡는 전통방식을 재현한다는 이 축제에, 평소 곤충을 비롯해 이런저런 것들을 잡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특히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하며 꼭 신청해달라고 애원하며 기대감을 가졌다. 나 역시 이번 행사가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멋진 체험활동이 되어주리라 확신하며 서둘러 신청하였고, 더 알찬 여행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에 뿌듯했다.
그러나 당일 체험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일단 간조 시간이 늦어졌는지 행사가 1시간 정도 지연되어 울퉁불퉁한 돌들을 밟고 비를 맞아가며 오랜 시간 서서 대기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슬슬 지쳐가던 차에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고, 천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인파 속에서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눈으로 좇아야하는 수고로움은 고기잡기보다 더 힘든 덤이었다.
아이들이 먼저 출발하여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이 때문에 보호자와 분리된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물고기보다도 더 많은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며 아이를 찾느라 물고기 잡기는 한동안 뒷전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을 모두 만나게 되어 안심한 때부터 함께 물고기 잡기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미 많은 물고기들이 사라진 후였다. 서너 마리씩 잡아 양배추 망에 넣어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여럿 보여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그들의 양배추 망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급해져서 도망가는 물고기를 재빨리 잡으려다 울퉁불퉁한 바닥 돌에 걸려 넘어져 무릎의 타박상과 발톱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족 쪽으로 헤엄쳐 오던 제법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푸른색 점과 옆줄이 인상적인 예쁜 이 물고기는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잡은 물고기를 회 떠준다 하여 꽤나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한 접시의 회로 변신했다. 바로 자연산 참돔회였다.
그런데 킬로당 8만 원을 호가한다는 귀한 회 한 접시를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들고 가려니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회 접시 위를 덮고, 회 접시 아래에 초장 종지를 받쳤다. 꽤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기뻐하며 조심스레 옮겨왔는데, 문제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급한 마음에 그대로 모자로 덮어 놓은 채로 잠시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을 챙겨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큰애가 내 모자가 놓인 모습을 보고서 내가 모자를 깜박 잊고 못 챙기게 될까 봐 챙겨주려는 마음으로 확 잡아채듯 집어 들었는데 회접시와 초장 접시가 뒤집혀 바닥에 떨어지는 그 사달이 나버린 것이었다.
엄마의 휴대폰과 모자를 양손에 집어 든 채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는 순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큰 애의 표정과,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듯한 회 조각들의 모습은 비참할 만큼 대조적이었다.
그때 그 순간,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실망감을 억눌러 참았어야 했다. 모자로 회접시를 덮어놓은 것을 결코 알 리가 없었을 큰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엄마를 챙기고자 일부러 나선 아이의 선의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아쉽지만 회를 못 먹게 된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여야 했었다. 그런데 나의 머릿속에서 그런 상황과 생각들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입에서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라는 외침이, 불덩이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무려 8만 원짜리 참돔인데, 엄마가 한 시간 정도 줄 서서 떠온 것인데, 왜 그렇게 너는 그리도 조심성이 없는 것이냐며 다다다다 귀 따갑게 쏘아댔다. 왜 하필 그 모자를 집어 들었느냐며, 큰애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밑에 회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상황까지도 큰애의 잘못인양 다그쳐댔다. 그러다가 겨우 분노를 참으려고 애쓰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아뿔싸, 이곳에 와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는 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큰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눈빛에 비친 내 모습은 한 마디로 정신줄 놓은 매정한 엄마였다. '애가 모자 아래 그게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걸 자기가 거기 둔 게 잘못이지'라는 남편의 말에 밑도 끝도 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 뒤섞여 밀려들었다. 주변에서 보고 있던 아저씨 한 명도 거들었다. '그거 회 뜨는 것도 돈 많이 줘야 돼요?' 분명 8만 원 어쩌고 하는 내 말 때문에 물어본 것이리라. 그 8만 원 때문에 애를 그리도 잡아댔나 싶었을 테니 말이다.
사방이 거울로 된 방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피하지도 못하고 계속 비춰보는 기분으로 하는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일단 우는 큰애에게 사과하며 큰애를 달랬다. 폭발하여 저지른 이 막장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했다. '엄마가 미안해, 네가 모르고 한 걸 그렇게 화내서 미안해...' 그 말에 큰애는 더 엉엉 소리 높여 울었다. 아이는 크게 상처받았고, 나는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나는 왜 폭주기관차처럼 애 앞에서 이성을 잃고 분노하여 펄펄 뛰며 치달았을까. 빗물과 바닷물에 절여진 채로 씻을 정신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때 나는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겠다고 결심하고 추진한 일정이었지만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헤매다가 무릎에 큰 멍까지 들고 발톱이 부러졌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잡은 귀한 물고기를 오랜 시간 기다려 회까지 떴건만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상실감에 나는 너무나 허무했고 속이 상했다.
사실 가족 중 회를 너무나 먹고 싶어 한 사람은 나 외엔 없었다. 한마디로 이 회 한 접시는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오늘 일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의미하는 마지막 장면이자 고생한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이 시가 8만 원짜리라는 회 떠주시는 아저씨의 말씀에 오늘 한 고생스러운 체험의 가치가 이 회 한 접시로 최종적으로 귀결되는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는 커녕 트라우마를 만들어 주어 버렸기에 큰애는 한동안 나에게 계속 사과하며 울먹거렸다. 네 잘못이 아니라 모자로 말도 없이 덮어 둔 채 너에게 화를 낸 엄마 잘못이라며 되려 여러 차례 사과하고 달랜 후에야 아이는 겨우 미안해하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한동안 아이는 회만 보면 문득 엄마가 불을 뿜으며 팔팔 뛰던 그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이 상황은 그간 결과 주의자로서 투자 대비 효율을 따지는, 아이의 실수에 너그럽지 않았던 평소의 내 성향과 모습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물고기를 잡기 전 설렘과, 물고기를 다 같이 합심하여 잡는 과정, 잡은 물고기를 양배추 망에 넣어 끌고서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기쁨에 들떠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를 뛰어다니는, 피곤함도 잊고 바닷물을 첨벙 대며 다니던 아이들의 모습 등... 이런 것들보다도 액면가로서 오늘 고생한 모든 것을 보상해주는 듯한 값 비싼 회를 맛보지 못했다는 - 어그러진 결과주의 심산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넘치는 속내가 결국 오늘의 더 귀하고 값진 모든 추억들을 망쳐버린 것이었다.
MBTI가 'J'성향인 나는 사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내내 예상치 못한 태풍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계획한 것들의 많은 부분을 변경하고 포기하며 내려놓아야만 해서 매번 실망해야 했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계획을 짜느라 분주해야 했다. 매 시간 날씨가 변하는 상황 속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일정과 식사할 곳을 그때그때 계획해 가족들에게 안내해야 했기에 나는 이 여행을 제대로 즐길 여유조차 없었다. 최대한 주어진 상황과 일정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되도록 많은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 채우는 임무를 맡아 수행하고자 했고 그것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으로 계획했던 더없이 멋진 일정은, 이렇게 접시가 전복되자 한 순간 모든 것을 날려버릴 다이너마이트로 변신하여 머릿속에서 펑 터져버렸다. 어쩌면 그 폭발물의 위험성은 여행기간 내내 쌓였던 스트레스의 응축도에 비례했을 테니 생각보다 크게 터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것은 어쩌면 내게 이번 여행의 정수 같은 것이었으리라. 계획이 성공적으로 현실화함으로 인해 느껴지는 낭만,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보람과 뿌듯함 등... 그런 것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었지 단순히 참돔 한 접시 먹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단 말이다. 참돔 한 접시는 이번 여행의 목적을 현실화하는 결정체와 같은 상징물이었다. 제주 여행의 한가운데에 놓인 메인 일정이자 예약 및 모든 과정에서 꿈에 부풀게 하였던 이상적인 일정이었고 그것이 어그러지며 발생한 문제 역시 내겐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내가 한 행동을 잘했다고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잘못이 없는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은 분명 부모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그랬던 나를 자책만 하기보다는, 왜 그랬을까 하고 나의 행동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나는 참돔을 맛보지 못해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내가 계획한 궁극적으로 멋진, 이상적인 여행의 장면이 어그러진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한 것이라는, J로서의 피곤한 삶을 변명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아니 앞으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내 계획과 달라져서 이상적인 상황이 어그러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또다시 그러지는 말자 다짐해 본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스스로 얼마나 힘이 들지, 'J'인 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플랜 A와 B를 오가며 후회 없는 완벽한 하루를 계획 중인 나야, 고생이 많구나! 하고 조금은 다독거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