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이야기해볼까요?"
강사님의 말에 사람들은 차례대로 여러 소설가의 책을 이야기했다. 몇 년 전 책 읽기 수업을 신청한 곳은 마포의 유명한 서점이었다. 토요일 오전 11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인 첫 시간. 소설가 강사님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내 차례가 되자 '양귀자의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때 강사는 피식 웃더니 "옛날 사람! 옛날 사람!"이라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올드하다는 뜻인가? 그 뒤로 옛날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책방 연희에서 하는 독서모임을 신청했다. 최신 소설을 읽는 프로그램이라 젊은 사람이 많았다. 황정음, 조세진 등 글을 쓰려면 최신 트렌드를 알아야겠지? 이런저런 독서모임에 참가하며 '올해의 젊은 작가상'을 받은 소설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은 위트가 넘치고 현실의 어둠과 일상을 다양한 상징성으로 표현했다. 좋은 글이었다. 요즘 소설을 아는 사람인척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딱 거기까지였다.
90년대에 신경숙. 공지영, 공선옥 등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남자 소설가 위주의 문단에 이들은 신선했고 여성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의미 있는 시기였다. 지금은 표절이다, 고루하다, 통속적이다 라는 평을 받지만 그때 나의 문학세계는 이들이 8할을 차지했다.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공중전화기에서 친구에게 1시간 내내 감상평을 쏟아내던 그날 엄청난 동전을 썼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을 때는 여자의 주체성에 대해 외치다 남자 선배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매디슨 카운트의 다리 소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했던 말 중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다.
"나는 진화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이오."
속도의 시대, 잘 팔리는 책의 특징은 짧고 간결함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옛날의 고루함, 진부함, 질척거림을 좋아한다.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노른자 책방 수업에서 고정순 작가를 만났다. 출판사 편집자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쓰고 있는 소설이 오정희의 '새' 같다는 평을 들었다고 했다. 소설이 궁금했다. 내가 작가님 책을 좋아하는 것은 낡은 듯 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글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는 돌고 도니 작가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날이 오기를.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편안한 삶을 산 이모는 왜 자살하고 악다구니 같은 삶을 사는 엄마는 활기차게 살아가는지 20대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각자 삶의 무게가 있고 그들이 되지 않고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강사 선생님이 옛날 사람이라고 말하는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양귀자 소설이 나에게 준 삶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고 옛날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것이다. 쿨하지 못해도 진화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어도 나 같은 종족은 어딘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