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 서점 여행자 (2)

부암동 100일 책방

by 일주일의 순이

나는 서점 여행자다. 서점을 찾아다니게 된 시작은 5년 전 부암동의 작은 책방을 만나고 서부터이다. 네이버 밴드에 100일 책방이 소개되었다. '왜 100일일까?' 궁금해서 밴드 글을 처음부터 읽었다. 서점지기는 부암동에 작업실을 얻으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책방을 열었다. 100일 동안 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름도 정하고 밴드도 열었다. 기한이 정해진 책방이라니 신선했다 방문하고 싶다는 댓글을 다니 언제든 찾아오라는 답글이 달렸다.


토요일 오후 부암동으로 갔다. 책방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5평쯤 될까 작은 서가에 책이 몇 권 꽂혀 있었다. 주인도 없는 곳에 있으려니 이상해서 나가려는 순간 문 앞에 있는 서점지기와 눈이 마주쳤다.

"손님이 계셨네요. 잠깐 치킨을 주문하러 갔다 왔어요."

"밴드 보고 찾아왔어요. 서점이 보고 싶어서요. "

"아 Y님이시구나! 반가워요. "

서점지기는 미소가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른 밴드원도 온다며 같이 이야기하자고 했다. 낯선 사람 속에 있기 그래서 구경만 하고 가기로 했는데 그녀는 나를 평소 아는 지인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치킨이 다 되었을 거예요 온 김에 같이 먹어요."

나를 놔두고 그녀는 나갔다 자연스럽게 서점을 지키게 되었다.


얼마 뒤 작은 여자아이와 함께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서점지기님이신가요 연락드린 사람입니다."

"저도 손님이에요. 서점지기님은 잠깐 나가셨어요. "

인사를 하고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어색했다 서점 안에 아이의 칭얼거림이 시작될 때 치킨과 함께 그녀가 돌아왔다.

"손님들만 놔두고 죄송해요. 여기 치킨 맛있는데 따뜻할 때 먹어요."

치킨 상자가 열리자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이 아빠는 청라에서 그림책방을 하는데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팁을 얻고자 주말마다 책방 투어를 한다고 했다. 서점지기는 내 코가 석자라며 웃었다. 두 서점지기 사이에서 조용히 치킨을 먹었다.


"제가 지역사업을 하나 신청한 것이 채택되어 기획한 부암동 프로젝트예요. 밴드에도 올리겠지만 오늘 오신 분들은 꼭 오세요."

그녀는 팸플릿을 나에게 건넸다.


프로그램이 다양했다. 부암동에 사는 예술인들이 마을전문가가 되어 동네를 구경시켜주고 오픈하우스처럼 작업실을 보여주는 일정도 있었다.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신청서를 작성했다. 다른 손님도 마을투어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서점을 구경하러 왔다가 부암동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부암동 골목투어를 하는 날에는 부암동 골목에 얽힌 역사를 들었다. 천리마 오디오 음악살롱에서는 차를 마시며 멋진 클래식 음악도 들었다. 차를 같이 마신 사람들 중에는 평소 좋아하던 에세이 작가도 있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진귀한 차를 종류별로 마시니 굳은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차를 내려주시는 분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며 두 시간 동안 귀호강을 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부암동 교회 마당에 둘러앉아 조명이 들어온 한양도성 성곽을 바라봤다. 부암동 밤공기가 달큼하게 느껴졌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윤여정 씨 인터뷰 중


부암동이 다르게 보였다. 유명한 맛집과 카페가 있는 곳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멋진 예술가들이 사는 곳으로 말이다. 직장과 집만 오가는 삶에서 다른 경계선을 엿보았다. 마음에 작은 씨앗이 심어졌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해 보고 아니면 쿨하게 다른 일을 찾는 유랑인 같은 사람, 마을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연대하는 삶을 사는 이를 보며 이곳저곳을 떠다니는 깃털처럼 살고 싶어졌다. 모두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길에서 벗어나면 큰일 날 것처럼 따라가기 바빴는데 내 앞에 열린 갈래길이 다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서점은 사라졌다. 서점지기는 다른 곳으로 뿌리를 옮겼고 그녀가 나에게 준 선물은 싹을 틔웠다. 그 뒤 서울 책방을 찾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생각이 다른 이를 만나 낯섦에 대한 경계도 허물어졌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고의 울타리가 점점 커져가는 나날들. 새로운 세계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가르쳐준 부암동 그 책방을 나는 기억한다